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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패악만 친절하게 그린 '전,란', 아쉽다

[리뷰] 넷플릭스 <전, 란>

24.10.15 09:00최종업데이트24.10.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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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복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강동원. 2009년 개봉작 <전우치> 이래 언제나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는 한 장면이다. 마찬가지로 <전, 란> 역시 강동원의 믿고 보는 멋진 폼에 의지한 바 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 란>을 설명하는 건 아쉽다. 박찬욱 감독의 각본, '죽었는데 또 죽이고 싶다는'는 어떤 관객의 말처럼 빛난 연기를 선보인 선조 역의 차승원, 애와 증을 오가는 이종려 역의 박정민, 그리고 진선규, 김신록 등 그 이름 만으로도 증명되는 출연진의 호연이 돋보였다.

영화의 절정, 해무가 낀 바다에서 세 사람이 마주 선다. 도망 노비이자 의병이었던 천영(강동원 분), 임금의 명을 받고 일본이 숨긴 보물을 찾아나선 이종려(박정민), 그리고 일본군의 깃카와 겐신(정성일 분).

분명 두 사람은 조선인이고, 한 사람은 일본인인데, 이들의 칼 끝이 엇갈린다. 천영을 향해 겨누어지는 조선인 이종려와 일본인 겐신의 칼 끝. 겐신을 쳐내고 나면 이종려가 달려온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종려와 겐신 역시 서로를 겨눈다. 누가 누구의 적인가? 거칠게 달려온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장면이 아니었을까.

운명에 맞선 천영의 선택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넷플릭스

영화는 광화문 광장에 정여립의 목이 내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영화답게, 영화는 박 감독 특유의 고어한 설정을 영화적 색채로 쓰고자 함에 거침이 없다.

때는 임진왜란을 앞둔 시기. 정여립의 목이 내걸린 이유는 바로 '대동계', 양반과 천민이 너나 할 것 없이 대동한 세상을 만들자 했던 그 주장은 '효수'로 막을 내렸다. 그 효수 당한 광장에 도망 노비 천영이 끌려간다.

자신의 이름 자를 쓸 줄도 몰랐던 천영. 아비는 양인이었지만, 어미가 노비였던 소년 천영은 하루아침에 노비 신세로 전락한다. 그가 끌려간 곳은 이종려의 집, 이종려의 아비는 무관 집안의 전통을 잇고자 아들에게 무술 수업을 시켰고, 아들이 대련에서 밀릴 때마다 그 죄를 물어 노비를 쳤다. 이제 막 또 한 명의 노비가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그 노비 대신 천영이 초릿대 앞에 다리를 걷어붙일 차례였다.

하지만 천영은 자신에게 닥친 숙명을 거부한다. 밤을 도와 담을 타 한 달음에 자신의 집을 향한 천영, 하지만 그곳은 이미 그가 돌아갈 집이 아니었다. 그렇게 낙인만을 남긴 천영의 첫 번 째 도망. 다시 돌아온 천영은 쓰러져 간 다른 노비와 달리, 그 스스로 종려의 스승이 되어 그의 무예를 일취월장 시킨다.

노예로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대신, 천영은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 것이다. <전, 란>은 임진왜란과 그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감독이 끌고 가고자 하는 건 바로 주인공 천영, 그가 운명에 맞서 선택한 이야기이다.

우선은 주인의 매질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가 외려 종려를 훈련시킨 것에서 시작해, 노비였던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종려 대신 과장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선택은 죽음을 재촉하고 이제 다시 두 번째 도망 노비의 신세가 된다. 그리고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천영은 청의 검신이 되어 세상에 나선다.

전란의 와중에서 갈리는 인간 군상들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장지혜

그렇게 천영의 검이 세상의 검이 되는 과정이 영화의 씨줄이 된다면, 날줄이 되어 영화를 이끄는 건 전란의 와중에서 갈리는 인간 군상들의 선택이다. 피란 길에 나선 선조는 자신의 길을 막는 백성들의 목을 친다.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기어오르다시피 한 배를 타고 떠나며 물길을 끊고, 백성들의 마을을 불살라 버리라 명한다. '죽었는데도 또 죽이고 싶'게 만드는 선조의 패악은 영화에서 악의 축을 이룬다.

그리고 그런 선조의 곁에서 그의 패악에 기름을 붙는 건 뜻밖에도 이종려다. 오해에서 비롯된 그의 분노는 거침없이 나아가, 천영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왜장이라도 기꺼이 내 편으로 만들려는 무리수를 둔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을 던진 의병들보다, 경복궁 복원에 필요한 보물을 찾아온 왜병장이 더 내 편인 시절,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노비였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적으로 치부되는 세상, 제 아무리 친구라 해도 신분을 넘을 수 없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왕조를 넘어서지 않는 세상, 영화는 묻는다. 누가 누구의 적이냐고.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전,란> 스틸 이미지.넷플릭스

그 맞은편에 자령을 위시한 의병들의 선택도 눈에 띈다. 임금이 계시는 쪽을 향해서 절을 하는 자령의 완고하고 우직한 충정과, 그런 자령의 충심을 '개나 줘 버리라' 비웃는 법동, 그리고 그런 가운데 어떻게든 면천의 의지를 불사르는 천영.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란의 후일담에 맞춰 배신과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사회 속 군상을 그려내고자 한다. 거기에 정여립의 대동계를 위시한 조선에 움뜨는 혁명적인 '대동 사상'을 기반으로 한 완고한 신분제에 대한 의문으로 영화의 엔진을 달군다. 또한 강동원이라는 배우의 장점을 한껏 살려낸 '칼' 대결 신이 영화를 빛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영화적 장치들이 감동으로 이어졌는가 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어린 시절 종려와 천영이 죽마고우가 될 정도의 우정에 진득한 공을 들인 반면 의심한 번 없이 분노로 가득차는 이종려의 캐릭터라던가, 도망 노비였던 천영이 왜 의병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아쉽다. 즉, 영화는 가장 운명적이어야 할 등장인물들의 선택의 순간 가장 불친절하다. 선조의 패악은 친절하되, 의병들의 캐릭터와 운명과 선택은 '답정너'처럼 다뤄진다.

<전,란>은 끊임없이 운명에 저항하는 입체적인 캐릭터인 천영이라는 인물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어 버렸다. 실존 인물 의병장 한명련의 이야기에 살을 붙인 영화는 사실들의 나열 혹은 강조만으로 영화적 설득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천영에 대한 개연적 공감보다, 마치 그의 화려한 칼 솜씨를 위한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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