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영혼의 여행>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우리가 때때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인 에릭 쿠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장편 데뷔작인 <면로>(1995)가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뉴커런츠 섹션에 초대되었던 것이 시작이다. 이후 꾸준하게 영화제에 참석했던 그는, 올해 영화제에서 신작인 <영혼의 여행>이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더 의미 있는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20여 년 전 당시 영화제를 처음 방문했을 때 한 살이었던 아들 에드워드 쿠가 이번 작품의 각본까지 맡으면서 그 의미가 더 커졌다.
그의 신작이자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영혼의 여행>은 싱가포르, 일본, 프랑스, 세 국가의 합작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쉘부르의 우산>(1965)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프랑스 영화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까뜨린느 드뇌브가 주연을 맡았다. 에릭 쿠 감독은 그가 이 작품에 함께하게 된 것 자체가 영혼의 여행과도 같았다고 말한다. 영혼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이번 영화에서 존재를 넘어서는 인물을 그려내는 데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02.
세계적인 명성의 가수 클레어(까뜰린느 드뇌브 분)는 오래 사랑했던 반려견 레옹의 죽음으로 큰 상심에 빠진다.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본 도쿄로 향하지만 감정을 쉽게 추스르기는 어렵다. 공연은 많은 팬들의 성원 속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이 무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공연이 끝난 직후, 클레어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유조(사카이 마사아키 분)는 그의 오랜 팬이다. 한때 인기 있는 밴드의 멤버였지만 지금은 이혼 후에 홀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공연을 앞둔 어느 날, 클레어의 음악을 듣던 그는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를 대신해 콘서트를 찾은 사람은 아들 하야토(타케노우치 유타카 분)다. 장례와 유품정리를 위해 유조의 집을 찾은 아들은 티켓을 발견하고 공연장을 찾는다. 죽음을 맞이한 클레어와 유조는 영혼인 상태로 이승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서로 마주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가수와 팬이 아닌 유령인 상태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당황한다. 죽으면 승천해서 그저 사라진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안심하게 되는 것은 영혼인 상태로는 언어가 달라도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이제 클레어는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왔던 오랜 문제의 답을 구하고자 여행을 떠나고자 하고, 유조는 그를 위해 기꺼이 동행하기로 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