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장면 갈무리
tvN
모피 원정군은 시비르 칸국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동쪽으로 계속 진군을 이어가며 각지의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강제로 복속시켰다. 처음에는 순진하던 주민들을 기만하여 모피를 챙기던 러시아는 목표했던 수량이 부족해지자 본색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무력으로 야사크(YASAK) 제도를 도입하여 원주민들에게 일정량의 모피를 세금으로 강제 공납하게 했다.
러시아군은 원주민들을 약탈했고 반항하는 이들은 잔혹하게 처형했다. 가족이나 족장을 인질로 잡은 뒤 야사크를 받고 나면 그제야 풀어주기도 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러시아군의 협박으로 '피 묻은 칼에 강제로 입을 맞추면서 영원히 야사크를 바치고 러시아에 복종하며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러시아 모피 원정대의 만행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러시아는 원주민들을 착취하기 위하여 빼앗은 모피를 다시 구매하여 야사크를 내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모피 대신 저당 잡힌 땅을 빼앗기고 빚이 늘어나다가 결국 노예처럼 팔려 가는 비참한 악순환을 거듭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많은 원주민들은 200여 년 전 자신들의 조상이 진 빚까지 갚는 일도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왔던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모피 원정대가 침략 과정에서 옮겨온 전염병으로 인하여 약 50%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 강국들이 남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에 저질렀던 약탈과 학살의 '러시아판' 버전이 바로 시베리아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이러한 러시아 모피 원정대는 의외로 한국사와도 인연이 있었다. 17세기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의 나선정벌(1654-1658)은 바로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원정대와 두 차례 교전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조선의 조총 부대가 맹활약을 펼치며 조청연합군은 러시아 원정대의 남진을 막아내고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어 국경을 확립한다.
끝없는 '피의 모피 착취'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결국 세계 경제의 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러시아는 거듭된 약탈과 사냥으로 시베리아에서도 점차 모피수의 씨가 마르기 시작하자 또다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결국은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 북미의 알래스카까지 도달하게 된다. 이로써 18세기 러시아 제국은 아시아와 유럽, 북미를 잇는 약 2천 2백만km에 이르는 역대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게 된다.
북미에 교두보를 확보한 러시아는 한때 캘리포니아까지 진출하여 당시 멕시코 영역이던 포트 로스를 점령하고 러시아 정착촌을 건설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알래스카의 해달 개체수 감소로 모피 사업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고, 북미에서 미국과 캐나다가 모피 사업에 뛰어들며 러시아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모피 사업이 위축되면서 러시아는 1841년 결국 포트 로스를 멕시코에 매각하고 철수한다. 모피 사냥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영토 확장이 시베리아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를 끝으로 200여 년 만에 겨우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러시아의 모피 원정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동물의 가죽을 노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과 동물이 이 과정에서 비참하게 희생을 당해야 했다. 모피 사냥으로 인하여 몇몇 동물이 아예 멸종당하거나 현재 멸종 위기에 놓였다.
또한 현대에도 계속되는 사냥꾼들이 잔혹한 동물사냥 모습이 각종 미디어에 보도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환경단체 <휴먼 소사시어티>에서 공개한 캐나다의 바다표범 사냥은 인간의 욕심으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러시아 제국은 검은 황금인 모피를 얻기 위한 욕망으로 시베리아를 넘어 미국까지 진출했고, 결국 세계 영토 면적 1위에 오르며 영광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인간의 그릇된 탐욕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의 비극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류의 역사에서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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