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선샤인 포스터
코리아픽처스
조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은, 메리가 하워드를 사랑하며 쌓은 기억을 지웠지만, 그를 향한 메리의 사랑 자체는 지우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메리는 기억 제거 시술을 받은 사람들이 사전에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와 진단서 등을 클레멘타인과 조엘을 포함하여 모든 시술 이용자에게 보낸다.
우화적인 전개를 통해 마침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가 나온다. 테이프에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각각 서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험담과 비난에 가까운 상대의 고백을 통해 기이한 방식으로 두 사람은 사랑한 기억을 복원한다. 좋아한 감정의 흔적만으로 기억의 백지상태에서 다시 사랑에 빠졌지만, 복원한 과거를 알게 되며 두 사람은 새로 시작한 사랑을 계속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새로 시작하면 안 될 이유를 많이 늘어놓긴 하지만 두 사람은 새로 시작하기로 한다. 새로 시작하는 데엔 조엘의 "오케이"와 이어진 클레멘타인의 "오케이"가 다였다. 두 번의 오케이로 두 번째이자 첫 번째인 만남을 두 사람이 이어가기로 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기억은 양날의 칼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듯 기억은 두 사람의 사랑에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동시에 작용한다. 기억은 사건이 아니다. 동시에 사건일 수도 있다. 기억의 기억은 논란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기억의 범주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기억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사건으로 넘어간다. 기억이란 것 자체가 언제나 현재의 행위이며 실존적으로 사건은 자아 밖으로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과 마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주치는 손 중에서 어느 손을 꽉 잡으면 사건 중에 사랑이 된다.
혼자 하는 기억 또한 원론 상 현재 시제라고 해야 하겠으나, 자아 밖으로 나가지 않은 현재는 시제가 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시제는 언제나 공동의 감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랑 영화가 로맨스의 시작, 성장, 갈등을 다루는 데 비해 이 영화는 기억의 선별적 삭제라는 상상을 통해 사랑의 끝과 회복의 모습을 묘사한다. SF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조잡한 헬멧으로 구현한 SF 유사품이 우화를 지향한다고 보는 게 무난하다.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제거보다 <첫 키스만 50번째>의 기억상실증이 더 비현실적이다. 비유로 표현됐지만, 사랑하며, 이별하든 안 하든 때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흔히 보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헤어진 후 실연의 고통을 회피하려고 혹은 재회를 방지하려고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만, 영화는 이들이 기억 너머에서 사랑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 사랑이란 감정이 기억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됐는지를 보여주면서 더불어 사랑의 본질은 사랑한 기억의 진공 속에서도 감정이 살아남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관계를 만들고 관계의 지속이 기억을 축적한다. 축적된 기억은 또 다른 감정을 산출한다. 처음의 감정과 기억이 추가로 산출하는 감정이 아마 다른 모양일 테지만 두 감정이 모두 사랑의 범주에 묶일 수 있지 싶다. 비유적으로 사랑의 기억이 우주의 물질계라면 사랑의 감정은 암흑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암흑에너지는 무엇에 비유되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