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기 싫어서' 속 한 장면
tvN
tvN <손해 보기 싫어서>의 '정아(이일화 분)'는 처음 만나면 평범한 사모님이다. 꿀비그룹의 회장인 남편을 보필하고, 사장인 아들에겐 사랑을 베풀기 바쁘다. 직원들과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하지만 특별히 지시를 내리진 않는다. 언제나 화려한 옷차림을 유지한다. 이것만 보면 사모님 캐릭터의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실체는 집안에서 나온다. 그는 남편에게 반말, 정확히는 공격적인 말투를 쓴다.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남편이 아들을 훈계하자 "가정에나 충실하라"며 일갈하고(1화), "당신의 행동은 외도가 아닌 오입질"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4화). 또한 회사로 혼외 자식을 들인 남편이 변명하자 "닥치라"는 비속어를 뱉는다(9화). 분노를 참지 못해 남편이 가꾼 정원을 부수고 "네가 키운 것들은 싹을 자를 거라"고 협박하는 정아의 행동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기본값인 여타 사모님 캐릭터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비수 같은 말투는 아들에게도 향했다. 그는 아들에게 "회사 물려받고 싶으면 조심히 하라"며 "이 부를 갖고도 남자를 잘못 들여 '박복한 X' 소리를 들었는데 자식 복도 없다는 소리 듣기 싫다"고 경고한다(3화). 또 남편의 모습을 투영해 "부도덕하고 무책임하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충고하거나(3화) "사생활은 복기호 아들답게 깔끔하게 해결하라"며 죄책감을 덧씌우기도 한다(4화).
남편에겐 엄격한 책망을, 아들에겐 부채 의식을 따지는 정아는 자신이 느끼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남편도, 아들도 상아의 욕망 앞에서 절절맨다. 남편은 아내가 화낼 때마다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며, 아들은 '미혼 여자를 근처에 두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착실히 따른다.
정아의 욕망은 관계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 선정아의 욕망은 더하다. 실내 정원에 앉아 고상하게 태블릿 PC를 들고 있는 정아. 남들이 보면 고전소설을 읽는 줄 알겠지만, 실상은 아찔한 19금 로맨스물이다. 그는 19금 웹소설의 열렬한 구독자다. 회차마다 작가를 응원하는 댓글을 달고,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한다는 소식에 직접 투자비까지 댔다. 이토록 성적 욕망에 충실했던 사모님이 있었던가. 그 욕망은 남편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철저히 자신만을 향했다는 점에서 변혁적이다.
선정아는 큰 그림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