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시대"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에이썸 픽쳐스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꾸준히 여러 경로로 국내에 재상영되는 것은 물론, 예술영화 재개봉 붐을 타고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관객을 홀리거나, 혹은 알고 봤더니 이번이 첫 개봉인 상황을 맞이하며 새롭게 흐름을 타고 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감독의 영화를 애호하는 이들에겐 '숨은 보석' 같던 <독립시대>도 극장에 걸릴 예정이다.
<독립시대>는 아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하나 그리고 둘>로 감독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질감이 들 법하다. 대개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도시적 감성과 함께 곁에서 지켜보듯 사색하고 관조하는 카메라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음악 및 풍경으로 각인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언뜻 정신없이 속사포처럼 대사가 쏟아지고 다양한 인물들이 부대끼는 군상 극이다. 감독의 작업 중 확실히 예외에 속한다. 그가 영향받은 사조 중 다른 작업에선 드러나지 않던 미국 독립영화 전통이 진하다. 우디 앨런이나 로버트 알트먼 작품에서 느껴지던, 그저 소소한 일상 속 에피소드가 끝없이 이어질 뿐인데 나중에 보니 거대한 풍경화가 그려진 것 같은 스타일이다.
영화 초반은 그저 눈에 불 켜고 쏟아지듯 튀어나오는 인물과 상황 파악에 정신없다. 대체 저 사람은 누구고 저 사람과 무슨 관계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요즘 같으면 OTT 드라마 '정주행' 전에 등장인물 관계도 펼쳐놓고 예습하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렇게 방황하다 서서히 머릿속 하나의 '지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이제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갈리고 엮일지 두근두근 지켜보면 된다. 인물들의 속사정은 마치 우리들의 IMF 직전 '좋았던 옛 시절'과 고스란히 겹쳐 보인다. '신인류의 사랑'이나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같은 질감이 반갑게 재현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지점 때문에 아마 에드워드 양이 유독 국내에서 더 사랑받을 테다.
경제적으론 과거 세대보다 풍족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고민과 사정은 만만찮게 존재한다. 몰리와 아킴으로 대표되는 신흥 부유층의 정서적 공허와 함께 독립적 삶을 향한 갈망, 부모세대의 전통적 관계와 차별화된 인생을 설계하고 싶지만 오랜 인연에 속박된 청년세대 풍경, 경제적 번영으로 시대의 총아가 된 문화예술의 모순과 미디어 활황, 변화와 기회의 시절이지만 원하지 않게 물려받은 대륙과의 체제경쟁과 그와 무색하게 활성화된 경제적 결합의 지정학이 화면 가득 흐른다.
그런 변화무쌍함 속에서 청년세대의 갈등과 모색은 여러 상징으로 구현된다. 단막극처럼 영화는 종종 암전과 함께 공자의 경전을 인용하며 교훈 극적인 태도를 갖춘다. 에드워드 양 작품에선 이채로운 구석이다. 하지만 넓게는 감독의 영화적 정수를 이탈하지 않는 색다른 '변주'로 이해하면 될 테다. 대륙의 사정과 대만이 처한 숙명은 자유분방해 보이는 주인공들에게도 의외가 없다. 지나가듯 툭 던지는 자조,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 대륙통일 구호와 함께 황금만능주의로 이미 대만과 통합된 본토 체험담은 스타일로만 머물지 않는 에드워드 양의 우주를 가감 없이 구현한다.
인물들이 진지하게 던지는 질문과 고민은 동시대 그리고 지금 현재 한국 청년세대에게도 여전히 통용될 지점이다. 아마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독립시대>를 극장에서 보는 건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테다. 현대 동아시아 영화의 원형을 목격할 시간이다.
<작품정보>
독립시대
獨立時代
A Confucian Confusion
1994 대만 드라마/코미디/로맨스
2024.09.25. 개봉 129분 15세 관람가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진상기, 금연령 외
수입 ㈜에이썸 픽쳐스
배급 ㈜디스테이션, ㈜에이썸 픽쳐스
1994 47회 칸영화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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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