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요크 < Vespertine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One Little Indian
세기말의 이유 모를 긴장감과 새천년을 고대하며 생겨난 수많은 혼란은 비요크를 향한 극적인 필터로 작용했고 이에 힘입어 2년 단위로 신보를 발매하던 그가 돌연 영화계로의 외도를 선언한 일은 분명 예상 밖의 행보였다. 당시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와 < 백치들 >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덴마크 출신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러브콜에 응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2000년 작 < 어둠 속의 댄서 >는 공장에서 일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셀마(비요크 분)의 끝없는 추락을 다룬 영화로, 오늘날 익히 알려진 촬영 과정에서의 심각한 마찰과 달리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해 열린 제53회 칸 영화제에서 작품은 황금종려상을, 비요크는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알렸고 이에 따라 앞으로 배우 활동에 전념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던 상황. 그는 "영화를 위해선 목숨을 바칠 수 없지만 음악을 위해선 목숨을 바칠 수 있다"며 본업 복귀를 선언한다.
사실 음악계를 떠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배역에 사운드트랙 작업까지 도맡아 지칠 대로 지친 그였지만 촬영 기간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남편으로 맞이할 미국의 현대 미술가 매튜 바니와 교제를 이어가며 그간 발매한 앨범에선 비중이 크지 않았던 '사랑'이란 감정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앨범명 'Vespertine'은 땅거미가 지고 난 뒤의 형상을 의미한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비요크는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유전병을 앓아 밤보단 낮을 선호하고 뮤지컬 단막보단 공장 소음에 익숙한 이방인 역을 분했는데, < Vespertine >은 이의 연장으로 제작된 동시에 의미적으로 상극에 위치한다. 밝은 낮보단 어두운 밤이 사랑에 어울리고 기계의 소음보단 애달픈 속삭임이 좋으며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결핍따윈 없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듯 사랑과 성(性)을 주제로 육체와 영적 추상 간의 관계를 다룬 < Vespertine >은 전작의 마초적이고 적극적인 인상의 반대편에서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물론 방식은 동일하다. 트립 합 사운드를 기반으로 실물 악기와 일렉트로니카의 극적인 조우를 담아낸 < Homogenic >처럼 합창단과 현악, 하프 연주 등 낭만주의적 요소와 전자 건반이나 타악 위주의 효과음을 깔끔히 융합한다. 고전적 오케스트레이션과 현대적 비트 프로그래밍의 아름다운 만남인 셈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조심스럽고 어렵다. 쟁취하려 달려들수록 명은 짧아지고 멀어지면 온도를 잃는다. 이상적인 방법은 적정 거리를 두고 절제와 침착을 유지하는 것. 매튜 바니와의 관계 속에서 깨달은 간단하고도 어려운 명제를 작품에 투영하기 위해 심장 박동이나 호흡과 유사한 박자를 기저에 두고 의도한 노이즈는 일상적 소음에 크게 지나지 않도록 설계한 뒤 속삭이듯 불안정한 보컬을 얹는다. 온전치 못한 가창이 거슬리지 않는 까닭이 어쩌면 그 자체로 우리네의 사랑과 닮아 있어서는 아닐지 생각해 본다.
확실한 시퀀스, 강약 조절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