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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식민주의에 맞선 김말봉을 아십니까?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김말봉 작품세계 조명한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24.08.21 10:53최종업데이트24.08.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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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서울연극협회, 양동민

'김말봉을 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선 필자는 김말봉을 몰랐다.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말봉은 예술적 가치보다는 흥미 위주의 통속적인 소재를 다룬 소설, 즉 '통속소설'을 쓴 근현대 작가다. <찔레꽃>, <망명녀> 등의 유수한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김말봉이 여성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실제로 극중에 김말봉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이름이 남자 이름 같다며 불평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연극에는 해설자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김말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김말봉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다. 김말봉에 대해 잘 모르는 해설자는 다른 해설자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아무것도 모르기에 순수한 시선으로 김말봉을 바라본다. 김말봉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자신과 유사한 처지의 해설자를 반가워한다.

해설자가 연극을 함께 지켜보며 김말봉에 대해 알아가는 것 또한 관객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런 해설자는 김말봉을 알아가면서 내내 질문을 던진다. '왜 그동안 김말봉을 몰랐을까?' 하고 말이다. 이 질문에 김말봉의 말과 연극의 제목이 일련의 힌트를 제공한다.

무대에 등장한 김말봉은 "순수귀신을 버리라"고 소리친다. 당대 문단을 향한 외침이었다. 문단은 순수문학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고, 통속소설은 그런 문단의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김말봉은 그런 문단에 의해 통속소설이나 쓰는 여류작가 쯤으로 취급받았다. 그런 문학계의 전통 탓에 김말봉은 애써 외면당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연극은 회고한다.

'김말봉의 작품 세계'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연극은 잊힌 김말봉을 다시 기억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김말봉을 대신해 항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라는 당돌한 제목으로 말이다.

연극은 김말봉의 소설 3편을 차례로 무대 위에 구현한다. 아내에게 바람 피우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벽장 속에 숨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인 <고행>, 청춘 남녀의 자유 연애 소설 <찔레꽃>, 기생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수난사를 다룬 <화려한 지옥>까지. 이를 통해 김말봉의 작품 세계를 소개함과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왜 김말봉의 작품이 문단으로부터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질문케 한다.

<미학 이론>이라는 책으로 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는 예술에 자명한 것은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아도르노가 1903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고, 김말봉은 1901년에 태어나 1961년에 사망했으니, 둘은 활동 시기가 겹친다. 만약 아도르노가 김말봉을 지워버린 문학계를 봤다면 통렬하게 비판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 세계를 들여다본 통속적 시도를 천박한 것으로 취급해 애써 외면한 문학계를 말이다.

여기에 관객 입장에서 김말봉을 바라본 필자의 비판도 감히 덧대어본다. 당시 문학계는 순수문학만을 취급했다고 하는데, 통속소설이 다루는 가장 평범한 일상이 가장 순수한 것 아닌지.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서울연극협회, 양동민

통속 작가, 그리고 시대에 맞선 여성운동가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은 통속 작가로서의 김말봉만 그리지 않는다. 김말봉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덕분에 무대 위에 선 김말봉에게선 소설가의 모습뿐 아니라 여성운동가의 모습, 그리고 일본 식민주의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했던 식민지인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앞서 연극에 등장하는 소설 세 편을 간략히 설명한 바 있다. 한 줄짜리 짧은 설명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김말봉은 여성 캐릭터에 크게 신경을 쓴 소설가였다. 자유 연애 소설 <찔레꽃>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게 자식의 도리냐고 묻는 아버지 앞에서 되레 아비된 도리를 질문하며 자신이 원하는 남성을 당당히 말하는 여성을 그려낸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가부장주의의 최고 권력자일 뿐 아니라, 은행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도 높은 인물이었다. 이런 아버지에게 굴하지 않은 여성이라니, 통속적인 이야기로 주체적 여성상을 제시한 김말봉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고행>에서는 아내의 눈치를 보는 남편을, <화려한 지옥>에서는 공창폐지운동을 펼치는 여성들을 그려낸다(참고로 공창제는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실시한 성매매 관리 제도이다). 이를 토대로 볼 때 김말봉의 작품은 다분히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가부장주의에도 맞섰지만, 일본 식민주의에도 맞섰다. 연극은 해설자의 입을 빌려 김말봉의 항일 의지도 드러낸다. 일본이 우리말로 글 쓰는 것을 금지하자 김말봉은 절필했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김말봉은 해방 후에 다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고.

앞서 소개한 아도르노는 문화가 비판을 함의할 때 비로소 '참'이라고 설파했는데, 이 시각에서 본다면 김말봉의 문학이 진짜 문학 아니겠는가. 김말봉을 보며 "시대의 도덕에 맞서는 영웅이 되라"는 포스트모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뉴라이트 사학자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는 일이 벌어진 요즘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를 통해 접한 김말봉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런 김말봉, 여러분도 한번 만나보시길 권한다.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공연사진서울연극협회, 양동민

한편,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8월 25일까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남명렬, 김영선, 김정우, 이한희, 신정은, 이진철 등이 출연하며, 음악그룹 더튠(The Tune)이 현장에서 1930년대 음악을 연주한다.
덧붙이는 글 국립극단은 이번 여름부터 민간극단의 우수작을 선별하여 협업하는 '기획초청 Pick크닉'을 선보입니다. 극단 수수파보리의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2024 기획초청 Pick크닉'의 첫 작품입니다.
공연 연극 음악극 통속소설이머어때서 극단수수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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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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