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여공의 노래스틸컷
시네마달
한국이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이유
노동자의 처우 개선, 일본인 노동자와의 차별 해소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이들에겐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때는 군국주의에 물든 일제 강점기, 그것도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오사카였다. 일본인도 아닌 재일 조선인, 심지어 여성들의 파업이다. 일본이 법대로 대응하지 않은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사측은 상애단이란 조직을 고용해 여공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일본 경찰들은 방관을 넘어 여공들에게 폭력과 고문까지 자행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참혹한 이야기를 차마 낱낱이 담아내지 않는다. 그럴 수 없었으리라. 대신 영화는 소녀들이 중심이 된 그 파업 가운데 한 장면들을, 생존자들이 기억하고 기록이 외면하지 않은 단서를 바탕으로 극화시켜 표현한다. 상애단에게 된통 얻어터진 여공들이 몸을 일으켜 귀환하는 장면이다. 길게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이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선 모습을 영화는 인상적으로 잡아낸다.
얼굴엔 멍이 들고 몸엔 상처가 났지만 그네들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당당하다고,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까. 그것이 진실의 전부가 아니래도 좋다. 적어도 진실의 일부이긴 했을 테니까. 많은 고민 끝에 그 고통을 낱낱이 꺼내어 전시하는 대신, 이를 택했으리라고 나는 믿는 것이다.
이원식 감독이 말한다. "극영화 시퀀스를 처음부터 의도하거나 한 건 아니었다"고. 그는 "저도 모르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조금 더 편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며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어서 극영화 시퀀스를 선택했고 영화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강하나 배우도 말한다. "(오사카에서 사는 재일교포지만) 부끄럽게도 조선인 여공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몰랐다"며 "영화 촬영을 앞두고 증언집을 읽으며 알게 됐고 소녀들이 데모를 일으키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간 소녀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정진미 프로듀서는 말한다. "어머니들의 삶을 생각하게 됐다"고. 정 프로듀서는 "저도 세 아이의 엄마로, 어머니의 삶, 그 시대를 딛고 일어선 증언, 그런 것들이 큰 감명을 줬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줬다"면서 "지금 제가 사는 삶이나 다른 어머니들의 삶과 달리 훨씬 수고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힘차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좋은 영향력을 주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
이들의 말과 기대와 평가가 하나하나 틀리지가 않다. 백 년 전 여공들의 이야기가 오늘에 전하는 감상이 분명히 있다. 그 시절 여공들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발굴 않고, 또 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외면했던 잘못이 우리에게 있기에. 또 오늘의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열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타국의 여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오늘의 한국에서 반드시 울려퍼져야 한다. 그럴 가치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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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