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끝난 후 커튼콜 때 촬영.
편성준
때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이는 경우가 있다. 지난 28일 본 연극 <장녀들>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작품도 아니고 일본 여성 소설가(시노다 세츠코)가 쓴 중편 모음집을 원작 삼아 4시간짜리 극으로 구성하고 30명의 배우를 불러 모아 연습을 하고 그걸 하루에 다 연속 상연하는 작품인데 예매 공고가 뜨자마자 전회·전석매진이라니. 이런 건 만드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어떤 '믿음'이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이벤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게 한 결정적 요인은 각색과 연출을 맡은 서지혜에 대한 신뢰였을까 아니면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작품이라는 것만 듣고 앞다투어 모여든 김화영, 남동진, 이도유재, 이진경, 서지우, 김동순, 황정민, 최무인, 김귀선 등 쟁쟁한 배우들에 대한 팬심 덕분이었을까.
연극 <장녀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치매나 당뇨를 앓고 있는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의 '돌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과 상처를 보여주는 가정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표면적인 스토리를 조금만 들춰보면 서지혜의 연출은 그동안 '의무감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규정된 장녀들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로 시작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또는 '인간의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서 페미니즘적 시각까지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간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3시간 45분에 달하는 연극이 모두 끝난 뒤 아내와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서지혜는 괴물이다"였다. 그의 치열한 고민과 자신감, 그리고 미친 추진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뜻이다.
배우 연기만큼 놀라웠던 무대 구성-공간 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