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무주산골영화제
잘못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듯
<무뢰한>은 섣부른 답을 내놓지 않는다. 신뢰와 질서가 사라진 세계에서 피어나는 어느 좋은 것이 어떻게 더럽혀지는 지를 보일 뿐이다. 혜경을 향해 피어나는 재곤의 마음, 그에 조금씩 젖어드는 혜경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형사와 그가 쫓는 살인자의 애인이라는 상황이 둘 사이가 진전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만, 그럴수록 재곤은 혜경에게 더한 끌림을 느낀다.
호감, 사랑, 공감, 연민, 그밖에 피어나는 온갖 좋은 것들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이 안타깝다. 누아르의 방식으로, 즉 나쁜새끼의 사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이 장르 특유의 문법으로 영화는 관객에게 제가 보는 세계를 펼쳐낸다. 그와 같은 세상이 우리가 사는 현실 가운데 없다 할 수 없기에 관객은 진한 감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피어나 짓밟히는 들꽃을 보는 듯한 감상을 일으킨다. 정작 무뢰한 이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잘못 피어난 한 떨기 들꽃의 불행을 지켜보는 일이 고되다. 무뢰한이 되지 않고선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끝끝내 무뢰한이 될 수 없었던 이의 허망한 손짓을 끝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무뢰한>의 가장 큰 힘은 영화가 일으키는 그 진한 감상에 있다. 악이 선을 압도하는, 악이 선인 양 떵떵거리는, 선이 악을 흉내내는, 그러나 마침내 선이 악이 되어가는, <무뢰한> 속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감상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이 작품을 토킹시네마 프로그램에 내걸었다는 건 이 영화가 여전히 유효하단 걸 알아보았단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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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