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둔하게 생긴 초록 괴물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메리 셸리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들어낸 피조물, 즉 괴물의 이야기다. 애니메이션 등에서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괴물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원작 소설은 꽤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을 뮤지컬도 어느 정도 계승한다.
뮤지컬이 시작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넘버가 등장한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아래 '빅터')의 누나인 엘렌이 빅터의 친구 앙리 뒤프레(아래 '앙리')에게 빅터의 비밀을 말해주는 넘버다. 이 넘버를 통해 관객은 빅터가 생명 창조에 천착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필자는 전 시즌 통틀어 <프랑켄슈타인>을 총 세 번 보았는데, 이번에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프랑켄슈타인>을 '외로운 소년의 이야기'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빅터와 앙리, 그리고 빅터가 만들어낸 괴물의 행위의 이면엔 모두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빅터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흑사병으로 잃는데,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에서 생명 창조의 꿈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빅터를 손가락질하고, 일련의 사건으로 빅터의 아버지가 죽게 되자 빅터를 두려워한다. 모두의 외면 속에 빅터는 고립되었고, 시체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빅터의 연구는 계속된다.
빅터가 전쟁터에서 만난 앙리 역시 외로움을 간직한 존재다. 가족 없이 혼자 자라온 앙리는 빅터로부터 "친구"라는 말을 처음 듣는데, 이때 앙리의 삶이 바뀐다. 앙리에게 "친구"라는 호명이 얼마나 반갑고 따뜻했을까. 앙리는 빅터의 연구 동료가 되어 헌신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빅터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이때 앙리가 빅터를 대신해 자백한다. 이런 앙리의 결정에는 명확한 신념을 가진 빅터를 향한 동경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처음으로 외로움이 아닌 감정을 느끼게 해준 빅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앙리는 빅터를 대신해 사형을 당하는 순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넘버 '너의 꿈속에서').
"어차피 그날에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다시 사는 내 인생도 없었을 거야.
너와 함께 꿈꿀 수 있다면 죽는대도 괜찮아 행복해."
빅터는 앙리의 시체에서 머리를 떼어내 실험의 도구로 활용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바로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다. 빅터는 생명 창조를 해냈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이런 태도는 금세 바뀐다. 빅터는 공격성을 보이는 괴물을 죽이려 달려들고, 괴물은 안간힘을 써 탈출한다. 자신을 탄생시킨 창조주로부터 위협을 받은 괴물은 이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철저히 혼자가 된 괴물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 즉 빅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넘버 '난 괴물').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께 돌려 드리리.
세상에 혼자가 된다는 절망 속에 빠뜨리리라."
외로움에 몸부림친 괴물이 선택한 복수는 자신의 창조주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외로움에서 시작된 빅터의 생명 창조의 꿈, 앙리가 자신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빅터를 향해 느낀 감정, 그리고 괴물이 느낀 외로움과 앞으로 빅터가 마주하게 될 외로움까지. 외로움이라는 인류사의 오래된 주제가 <프랑켄슈타인>을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