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철학극장에서 제공받았음.
철학극장
악역 없는 드라마는 만들기 힘든 법인데 그런 면에서 이 연극은 일단 극본의 정교함이 빛나서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있었고 과잉이나 치기 없는 연출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으로 나뉠 수 없는 인생의 복잡성을 다루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특히 27년 전 잘못과 현재의 의도하지 않은 '양 그림' 표절에 대해 사과하는 기미코에게 '인생에 필요한 것은 용서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준의 대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울러 진짜 인생에서는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정리되는 법이 없으며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팩트 이전에 감정의 문제임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연극이 끝나고 좁은 극장 계단에서 즉석 파티가 열렸다. 생일을 맞은 심은우 배우를 위해 팬들이 케이크와 플래카드 등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극장 앞 아스팔트 위에서도 사람들은 좀처럼 헤어질 줄 모르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극을 좋아하고 뭔가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공감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202년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逢いにいくの、雨だけど>으로 첫선을 보였고 정식공연으로는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강력 추천한다. 2024년 6월 9일까지 을지공간에서 상연한다. 서두르시라.
● 작 : 요코야마 다쿠야
● 연출/무대디자인 : 고해종
● 출연 : 고은민 권주영 박새인 박수진 박승현 심은우 최준하 황규찬
● 장소 : 철학극장
● 기간 : 2024년 5월 30일 -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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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출신 작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읽는 기쁨』 등 네 권의 책을 냈고 성북동과 보령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유머와 위트 있는 글을 지향하며 출판기획자인 아내 윤혜자, 말 많은 고양이 순자와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