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카레이서, 소피아 플로쉬스틸컷
JIFF
남성들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는 여성 드라이버, 버거운 상황이 수시로 닥쳐오는 건 사실이다. 여성의 생리적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요소가 대표적일 테다.
그러나 영화가 그 자체로 소피아의 여성으로서의 투쟁을 하나의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삼고 있음에도, 그녀가 겪는 문제를 여성이기에 겪는 것으로 쉬이 치환하는 태도는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그와 같은 태도는 르망24 대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포뮬러 팀을 구하지 못해 르망24에 출전하게 된 그녀다. 이곳에서 그녀는 실버 드라이버로 다른 실버급 드라이버,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아마추어 드라이버와 함께 3인 팀을 이룬다. 프로 두 명과 아마 한 명이 출전하는 'LM P2' 분과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차를 몰 때 차체에 이상이 생기고, 초반부터 여러 바퀴를 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영화는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르망24에서 소피아의 팀이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는다. 영화 속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소피아는 한국계 드라이버이자 골드 라이센스 소유자 잭 에이켄(한세용), 당시 아마추어던 존 파브와 팀을 이룬다.
초반 크게 뒤지던 경기를 밤새 따라잡아 최종 8바퀴 차이로 마치는 것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소피아는 차체를 고친 후반부 밤샘 대질주로 팀의 역주를 책임졌다며 격려를 받는다. 그러나 이 대회의 부진한 성적으로 팀을 찾는 데는 실패한다. 금녀의 무대에 도전했던 불운한 레이서, 영화는 그렇게 끝맺는다.
반복되는 선택적 조명... 이제는 멈춰야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잘못, 즉 선택적 조명이 <여성 카레이서, 소피아 플로쉬>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된다. 당시 이들의 조는 팀의 세컨조보다 뒤진 25위로 경기를 마쳤다. 최상위 랭커와는 19바퀴 차, LM P2 1위와는 8바퀴 차다. 수많은 바퀴 중 최고 랩 타임도 3분 31초 652로 전체 5위, 최고수준이라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마저도 입상권에서 크게 처져 견제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작성된 기록이다.
무엇보다 아마추어 한 명씩을 포함해야 하는 LM P2에서 후반 격차를 좁힌 건 여러 팀 아마추어 가운데 최고인 존 파브, 이제는 프로가 된 50대 미국인 드라이버였다. 그러나 영화 속 그의 활약은? 놀랍게도 아예 없다. 팀 내 최고 실력자인 한국계 한세용의 활약도 마찬가지.
남초 집단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 물론 있을 테다. 그러나 실력이 가장 중요한 프로스포츠의 현장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수준의 많은 드라이버가 소피아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 사이에서 소피아는 이미 유명인사이고, 현저히 많은 광고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소피아 스스로는 톱랭커에 비해 기회가 부족하다 말하지만, 팀을 잃은 그녀에겐 영화가 간단히 보이고 넘어가는 것처럼 '여성 드라이버의 감동적 드라마'를 함께 쓰길 원하는 기업들의 호의적인 제안이 주어진다.
소피아가 탄 차엔 언제나 소피아의 이름이 크게 나붙어 있어 찾기 쉽다는 동료 드라이버의 말, 한세용과 같이 훨씬 윗물의 드라이버조차 F1 무대를 사실상 포기하는 상황 같은 건 결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성별이 제 실패며 성공의 원인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짤막한 영화의 클라이맥스조차 소피아의 정확한 기여를 밝히지 않고 선택적으로 편집해 조명하는 감독의 태도는, 소위 여성주의 영화들이 수시로 내보이는 잘못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나는 기꺼이 여성들의 도전을 응원할 준비가 돼 있지만, 이 같은 태도만큼은 배격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여성도 서보지 못한 F1 무대를 향해 전진하는 소피아 플로쉬는 대단한 여성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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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