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힘을 낼 시간> 스틸컷
JIFF
길을 잃어버리면 비로소 여행
선조들은 지혜롭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또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아나온다던가. 무튼 한민족의 후예인 이들 세 친구는 하룻밤 지낼 돈도 없는 처지 가운데서도 제주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감귤농장에 귤을 따는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고, 계약된 숙소를 팔아 또 돈을 쥔다. 어찌어찌하여 제주에서의 일정을 이어가며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길을 잃어버리면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이들의 여행이 꼭 그렇다. 아이돌 생활을 하며 친해진 이들끼리 정을 나누자며 준비한 여행길이, 그 이상의 감흥으로 다가온다. 가까이 지내면서도 쉬이 터놓지 못했던 마음들이 나눠지고, 바닥까지 추락하였다가 땅을 짚고 일어서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이들이 지나온 길은, 그대로 <힘을 낼 시간>이 진짜로 내보이고 싶은 이야기인 것처럼도 보인다.
영화는 이들이 일찍이 겪었을 삶, 즉 K팝 아이돌로서의 현실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수년의 노동에도 정산이 이루어지기까지 전혀 수익을 얻을 수 없는 불합리한 계약, 과다한 노동시간과 강도, 짧은 바지를 입어야 해 생리도 할 수 없었던 고충, 불명확한 미래와 그에 따른 정서적 불안까지 아이돌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어려움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겉으로 보면 화려하게만 보이지만 실상은 승자독식의 투전판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것이 어디 아이돌의 이야기일 뿐일까. 우리는 스포츠에서도, 문학이며 영화, 또 온갖 예술분과에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는 것이다. 상위 1%가 모든 부와 명예를 가져가는 세상, 그 성취를 얻기까지 거듭 절망해야 하는 현실 같은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