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스텔라' 스틸 사진
㈜미디어소프트필름
거악은 어떨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거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극도로 사악한 사람이기 마련이다. 아렌트가 지적했듯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극도로 사악한 범죄에 가담하기도 한다. 이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악행을 저지르는 상황에 아렌트가 주목했다. 이 상황은 정상적이 아닐 것이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제가 사회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렌트가 하려는 이야기이다.
평범한 인간이 저지른 악
<스텔라>는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다. 따지고 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필자가 직접 체험한 시기와는 다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아이히만이 나치로서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와 영화 <스텔라>의 시간적 배경이 겹친다.
영화의 주인공 '스텔라'(폴라 비어)는 1922년 독일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독일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 시기에 나치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 스텔라 골드쉬라크(Stella Goldschlag)를 모델로 했다. 나치로부터 '금발의 독'(Blonde Poison), 유대인으로부턴 '금발의 로렐라이'(Blonde Lorelei)라 불린 스텔라의 일생은 독일 현대사의 비극적 축도이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재즈 가수로 활동하며 미국 무대 진출을 꿈꾼 스텔라는 금발과 파란 눈의 미인으로, 그 시절이 아니었다면 특별히 '유대계'란 수식어 없이 그저 독일인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유대인 중 독일과 중부-동유럽에 거주한 그룹을 뜻하는 아슈케나짐에 속한다. 이 아슈케나짐이란 정체성은 사실 인종적이고 역사적인 근거가 희박한 것이어서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스텔라는 평범한 독일인의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스텔라를 아리안적 외모라고 평한 대목을 눈여겨봐야 한다. 유대인은 나치의 왜곡이나 대중의 오해와 달리 인종적 정체성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된 시대를 만나 스텔라는 역사의 격랑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문제적 개인으로 처참한 흔적을 남겼다. 나치의 핍박이 시작되자 꿈 많고 발랄한 어린 재즈 가수가 군수공장의 여공으로 강제되고 장밋빛 미래가 순식간에 암흑으로 바뀐다. 순응적이지 않은 성격 탓에 그는 가짜 신분증으로 신분증 위조 브로커로 활동하며 가족의 곤궁한 삶을 해결한다. 나치의 눈을 피하며 아슬아슬하게 진행한 대담한 '불법'적 생계 활동은 밀고로 끝이 난다. 밀고한 사람은 그를 아는 유대인이었다. 체포와 탈출, 또 체포, 고문 등의 과정을 거치며 스텔라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나치에 협력한다. 나치의 비밀요원 스텔라가 팔아넘긴 유대인이 적게는 600명, 많게는 3000명에 달한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