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노시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티캐스트
영화는 힙노시스가 작업한 대표작 관련 소개와 숨은 에피소드 및 작업과정들을 순차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단락을 구분해주려는 듯 애니메이션 효과를 활용해 해당 앨범 이미지가 등장했다 빠져나가곤 한다. 그렇게 호흡이 늘어지지 않도록 영화는 영민하게 지루할 틈 없는 속도감을 자랑하지만 그런 맺고 끊음을 초월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힙노시스를 앨범 디자인으로 이끈 어릴 적 고향 친구들, 핑크 플로이드의 존재감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초창기부터 거대한 성공과 예술적 성취, 그리고 갈등과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힙노시스는 단순한 지인이 아니라 내부자로서 조망한다. 이 대그룹의 흥망성쇠에 힙노시스 역시 일정한 지분을 갖는 셈이다. 레드 제플린이나 폴 매카트니 같은 동급의 거물 음악인들 비중도 상당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기록영화 같은 착시가 들 정도다.
힙노시스와 핑크 플로이드의 인연은 그룹이 결성되기 전 단계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은 동년배 세대로서의 경험은 물론이거니와, '아버지의 부재'라는 경험도 공유했고, LSD 같은 동시대 유행하던 약물조차 함께 겪었다. 힙노시스 특유의 작업 스타일, 머리를 강제로 열고 주입하듯 디자인을 만들어야 할 앨범을 반복해서 듣고 소화하려던 기질은 곧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적 변천사와 조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들은 시드 바렛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초창기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2집 < A Saucerful of Secrets, 1968 >과 그룹의 대표작이자 1970년대 록 음악의 상징 중 하나가 된 8집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 9집 < Wish You Were Here, 1975 >, 10집 < Animals, 1977 > 앨범 표지 작업을 맡았으니 그야말로 4(5)+2 멤버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개입력을 가졌던 셈이다. 그러하기에 시드 바렛의 비극적 운명과 동료 멤버들의 옛 리더에 대한 애증을 온전하게 공유할 수 있었다.
슈퍼 그룹이 된 후 음악성의 차이와 수익분배 문제 등 온갖 영욕을 겪어나간 핑크 플로이드의 후반부는 힙노시스의 쇠락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핑크 플로이드로 상징되는 스튜디오 대작 앨범과 전세계 공연을 통한 거대한 음악산업의 전성시대가 힙노시스의 상업성과 예술성 양자를 공히 달성한 디자인 작업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드 바렛의 광기와 폭주 대신에 보다 전형적인 밴드 활동으로 접어들며 비슷한 유형의 대그룹들이 겪어야 했던 분쟁을 핑크 플로이드 역시 극명하게 겪었던 셈이지만, 예술적 고집에 감정적 요소가 화학적으로 결합되면서 그들의 다툼은 몇 차례 화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못했다. 힙노시스 역시 궤는 다르지만 유사한 상황을 겪게 된다.
핑크 플로이드의 후반기 양대 축이던 로저 워터스와 데이빗 길모어가 그룹 이름을 놓고 벌인 수십 년간의 다툼으로 원수지간이 된 것처럼, 앨범 디자인을 넘어 사업 다변화를 시도하다 닥친 경영난 이후 결별한 '스톤'과 '포' 역시 함께 한 15년에 맞먹는 긴 시간 동안 다시는 만나지 않았고, '스톤'이 세상을 떠나면서 온전한 화해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로저 워터스와 데이빗 길모어가 아직 생존해 있기에 2005년 '라이브 8' 공연에서의 극적 재결합 같은 순간도 목격 가능한 것과 대조되는 결말이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좋았던 옛 시절이 종말을 맞이한 것은 거대한 성공을 경험한 예술가들이 부딪히는 위기의 전형적 예시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대중음악 지형의 변화와 직결되는 사례가 된다. 예술적으로는 지나치게 거대화하면서 전형적으로 고착된 슈퍼밴드 스타일에 대한 반감으로 펑크 록을 비롯한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고, 1980년대 들어 음악을 '듣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전환시킨 효시로 기록될 MTV가 등장하고 예술적 완성도 대신 '뿅뿅'거리는 전자음악과 화려한 이미지가 득세한 문화지형이 가미된 결과다.
이들의 도전과 실험을 티격태격하면서도 떠받치던 음악산업 토대의 변화가 상부구조인 힙노시스의 흥망에 결정적 요소가 된 셈이다.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힙노시스 구성원들은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시대의 음악인들과 제휴하긴 했지만 1960-70년대의 성취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그 시대에만 가능했던 방식과 경험이기 때문이다. '스톤'과 '폴'의 결별을 불러온 입장의 차이도 그 쇠락하는 과정에서 모색한 방향의 상이함 때문이었다. 관계의 종말은 거대한 구조적 격변 일부에 지나지 않던 셈이다.
그들의 후속세대가 힙노시스에 바치는 경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