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죽고 살던 시절, 지금처럼 결제만 하면 바로 뚝딱 뭐든 찾아서 듣기란 불가능했다. 음악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접하기 위해선 라디오 프로그램 DJ의 선구안을 쫓거나 물리적 재생 매체를 구해야만 했다. 테이프는 비교적 저렴했지만, 하루에도 같은 곡 수십 번씩 듣던 때라 얼마 못 가서 너덜너덜 늘어지기 시작했다(VHS 비디오도 비슷한 운명을 맞곤 했다). 워크맨이 보급되고 카세트 라디오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테이프는 편리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뽀대'가 부족했다. 반면에 작은 책상 가득 메울 만큼 얇지만 면적이 컸던 LP 레코드는 뭔가 그럴싸해 보였다. 턴테이블은 카세트 데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리하는데 공을 들여야 했지만, 바늘이 레코드 표면을 읽어내려가는 순간 시작되는 자글자글한 음향은 마치 백색 소음이 주는 안도감처럼 작용하곤 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이다 보니 음원 사이트건 유튜브 재생이건 텍스트로 기본정보 정도만 소개될 뿐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조그마한 테이프조차 온갖 공을 들여 근사하게 꾸며지곤 했다. 테이프 앞면에는 온갖 폼을 잡고 있는 뮤지션들의 사진이 아니면 속에 담긴 음악과 닮은 꼴의 이미지가 가득했고, 뒷면에는 음원 정보가 빼곡했다. 게다가 케이스 여백에 알뜰하게 자리를 차지한 속지가 별도로 존재했다.
그렇게 정성들인 앨범 상당수는 이른바 '명반'이라 불리던 것들이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알던, '아티스트'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붙던 록 음악 거장들의 앨범은 그 안에 담긴 명곡은 물론 앨범 디자인만으로도 '아우라'가 가득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의 음악을 정말 어쩌다 듣고 마는 현재에도 음향이 아니라 물질화된 디자인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핑크 플로이드, 비틀즈, 레드 제플린 같은 그룹들은 '전설'로 회자되며 그들의 앨범은 여전히 팔리고 대표곡은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그런 앨범의 커버 디자인은 과연 어떻게 누가 작업한 걸까? 그런 궁금증이 종종 들 때가 있었다. 한참 지나 정보의 바다가 전 세계를 잇게 되자 그 의문은 답을 찾았다. '힙노시스(Hipgnosis)'라는 영국의 디자이너 그룹이 바로 그 주역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경까지 10여 년간 그들은 거의 매월 새로운 앨범 디자인을 작업했고, 그중 상당수가 '전설'이 되었다. 이들의 앨범 디자인은 해당 앨범의 음악과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차원에 이르렀다. 그쯤 되면 디자이너의 정체가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안톤 코르빈의 다큐멘터리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바로 그 답을 제시하는 작업이 될 테다.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질풍노도의 실험과 도전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