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컷
무심한 자연 앞에 선 인간
성경의 '욥기'에서 의로운 인물인 욥은 아들, 딸이 폭풍우에 희생된 것을 비롯해 엄청난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욥이 가족을 잃고 통곡할 때 그의 친구들은 그가 말도 못 할 죄를 지었는지 떠올리라며 윽박지른다. 사실은 신이 사탄에게 욥의 믿음이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이처럼 모든 빗방울이 선한 자의 곡식을 축복하려 내리는 것도 아니고, 모든 가뭄이 사악한 자를 징계하려 드는 것도 아니다.
욥의 이야기처럼 <악존>은 분명 무정한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가득하다. 신의 섭리나 우주의 질서로 말할 수도 있을, 가치판단이 없는 무심한 자연현상에도 인간은 쉽게 무릎을 꿇는다. 그리 설계됐다 하여 자연의 섭리에 굴복할 수만은 없다. 무심한 빗방울에도 특별한 의미를 불어넣도록 인간이 설계된 탓이다. <악존>에는 넓지는 않으나 의지할 만한 인간의 영역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사실이다.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법칙 아래에 있지만 인간들은 상류에 있는 사람이 하류의 사람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도덕률의 베이스캠프를 조그맣게 꾸린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새롭게 발생한 움직임은 곧 원래의 균형이 깨어짐을 의미한다"며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상황에서 무언가 잃어버리게 되고 그때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 간단히 말해 인생이란 가끔 그런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균형이 깨지는 건 자연의 일이지만 깨진 균형을 맞추는 건 인간의 몫이다. 섭리와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악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더 나은 곳으로 가려는 인간은 항상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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