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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촌 지키고 선 1000살 나무, 감독은 카메라를 들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676]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 1000 >

24.04.01 14:33최종업데이트24.04.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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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반짝다큐페스티발
 
독립영화란, 또 독립다큐란 무엇일까?
 
2024 반짝다큐페스티발(반다페)이 3월의 마지막 사흘을 뜨겁게 달구고 그 막을 내렸다. 아직 대중문화, 또 영화계 전반에 존재감을 새기지는 못했다지만 다큐와 독립영화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행사로 자리잡은 반다페다. 코로나19 이후 맥이 끊긴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워내며 올해만 150편이 넘는 작품이 출품되었을 정도.
 
반다페는 독립 다큐멘터리가 대중과 만나는 한국에서 몇 되지 않는 장이다. 가뜩이나 적은 창구가 정부와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고사하고 있는 가운데 다큐인들이 직접 열어젖힌 독립다큐계의 축제란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올해로 고작 두 번째 열리는 행사지만 반다페는 저만의 매력을 여럿 갖추었다. 상영하는 모든 작품에 한글 자막을 붙였고 상영 후 열리는 GV에서도 수어와 문자통역으로 청각장애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는 점은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매일 열리는 뒤풀이 행사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감독과 제작자 등 영화계 관계자가 두루 참석한 뒤풀이에서 관객 누구나 영화를 보다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귀한 경험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1000 스틸컷
1000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독립영화가 만들어 가는 사회적 자산
 
첫날 뒤풀이에 참석한 나도 여러 다큐멘터리 감독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여러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몇쯤 있었다. 그중 하나는 도대체 독립영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지원기준에 따라, 혹은 법규에 따라서 제작비며 제작주체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나누는 건 투박한 일이다. 기준은 수시로 변경되며 제작주체 또한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위 작은 영화, 투자를 못 받는 영화, 극장 개봉을 하기 어려운 영화를 독립영화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관심을 사로잡는 답을 내놓은 건 앞에 앉은 어느 다큐 감독이었다. 그는 2017년 <벼꽃>을 발표한 오정훈 감독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말하기를 독립영화란 '사회적 자산을 만드는 작품'이란다. 듣고 그 내용을 곱씹다보니 참으로 그렇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세상에 적지 않은 영화가 사회적 자산을 소진하고 있다. 소위 먹히는 방식으로 대중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한다.
 
반면 독립영화 가운데선 반대의 경우가 흔히 펼쳐진다. 창작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제가 하고픈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중 통하는 것은, 또 관객의 가슴에 박히는 것은 일부일 뿐이겠으나 그 다양성이 곧 영화예술 전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1000 스틸컷
1000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당신이 선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
 
반다페 2024 개막식에선 모두 3편의 영화가 관객들과 만났다. 저만의 문법으로 저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곧 사회적 자산을 빚어내는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영화제의 성향이며 지향을 짐작할 수 있는 개막작이기에 주최 측 또한 남다른 관심으로 작품을 가려냈을 터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신승우 감독의 < 1000 >은 여러모로 낯선 영화다. 한때 석탄채굴로 북적였던 강원도 정선 사북읍을 찾은 감독이 그곳의 풍경을 예술적 사진의 연속처럼 담아냈다. 폐광된 탄광촌 위에 한 명의 광부를 소환한 영화는 그의 뒤를 따르며 한때는 번성했고 어느덧 쇠락한 땅의 면면을 차분하게 비춘다.
 
사람들이 떠난 뒤 버려진 숙소와 뼈대만 남은 콘크리트 건물들, 막혀버린 갱도와 같은 것이 차근차근 보이더니 어느새 수령이 1000년이나 된 고목이 카메라 앞에 선다. 땅으로부터 석탄을 빼내어 이룬 번영도 마침내 끝이 나고 자리를 지키고 선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숲이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는 한 줄 문장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오늘의 번영에 앞서 있는 자연의 존재가 새삼 생생하게 다가온다. 도시가 서고 쇠락하는 동안 변치 않고 자리를 지켜온 숲은 낯설고도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물며 1000년 수령의 고목이야.
 
주지하다시피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카지노 강원랜드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한때 석탄을 캐어 삶을 꾸렸던 그곳이 도박으로 오늘을 지탱한다. 산업도, 시설도, 사람들도 들고 나며 제 모습을 바삐 바꿔간다. 그동안 제 자리에 굳건히 박힌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끈덕진 시선으로 오래 무엇을 바라보는 < 1000 >과 같은 영화는 얼마쯤 남은 그 드문 것에 주목한다.
 
1000 스틸컷
1000스틸컷반짝다큐페스티발
 
반다페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
 
세상에 이익 따라 일어나는 것은 흔하다. 이익이 사라져 물러가는 것 또한 흔하다. 그러나 그 모두가 떠나간 자리를 지키는 것은 드물고도 귀하다. 그 귀함을 포착하는 시선 또한 얼마쯤은 그 귀함을 나눠가질지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난해한 영화가 관객 가운데 몇이나 설득하는 데 성공했을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가 상영되는 와중에 우렁차게 코를 고는 어느 관객처럼, 꽤나 많은 이들이 '지루한 영화구나' 하며 지나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를 인상적으로 본 이들 또한 없지 않다.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 <해체: 바다의 몸>을 만든 박군제 감독은 < 1000 >과 관련하여 "버티어낸 고목과 버려진 폐광, 그 둘 사이를 배회하는 하나의 영적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며 "그 존재를 통해 두 개념 사이에 깊은 얽힘을 만들어낸 이미지의 흐름이 매력적이었다"는 평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또한 어느 감독이 말한 것처럼 영화가, 그리고 독립영화가 사회의 자산을 빚는 것이라면 < 1000 >과 같은 작품 또한 그 임무를 나누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지 않을까. 다수와 통하지 않는 시선이라도 꺾이지 않고 이어가는 자세, 그 고집 센 낯섦에게도 설 자리를 내어주는 여유, 반다페가 내년도, 그 후년에도 이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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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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