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은 김훈·최질의 난이 원정왕후 덕분에 성공했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다. 원정왕후가 아니었다면 서북면과 동북면 군사들이 개경으로 몰려와 쿠데타군을 진압했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보여줬다. 이런 상상은 당시의 실제 상황과 크게 괴리된다.
<고려사> 축약판이자 보충판인 <고려사절요>는 김훈과 최질이 "여러 위(衛)의 군대를 거느리고 난을 일으켰다"고 기술한다. '난을 일으켰다'에 해당하는 한자는 작난(作亂)이다.
김훈과 최질은 이 '장난'을 위해 '여러 위'의 군대를 인솔했다. '여러 위'의 한자인 제위(諸衛)는 '모든 위'로도 번역된다. 이는 김훈과 최질이 중앙군인 6위를 대체로 장악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으리라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도 묘사됐듯이, 1979년 12·12쿠데타 당시의 전두환·노태우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는 전·노의 반군이 서울을 빨리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김훈·최질은 6위를 대체로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래서 장태완 같은 장애물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1994년 10월 29일 서울지방검찰청이 발표한 12·12사건 수사 결과에 따르면, 최규하 대통령은 12월 12일 초저녁부터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재가 요청에 시달렸다. 최규하가 쿠데타를 승인한 것은 13일 새벽 5시 10분이 지난 뒤였다. 최규하가 '사인 좀 해주시라'는 전두환의 압박을 그 오랜 시간 버텨낸 것은 전두환이 서울을 장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과 무관치 않다.
이에 비해, 1024년 11월 25일의 현종은 꽤 신속하게 쿠데타를 승인했다. <고려사절요>는 "중지(衆志)를 거스르기가 조심스러워"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현종이 신속히 승인한 것은 11·25쿠데타 때는 장태완 같은 인물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반군에 맞설 정부군이 수도 개경에 없었던 것이다.
김훈·최질의 쿠데타가 성공한 것은 그 때문이다. 군주가 '사인할까 말까' 하고 고민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반군이 개경을 신속히 장악한 상태에서 거사가 일어났다. <고려거란전쟁>에서처럼 원정왕후의 조력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반란이 개시됐던 것이다.
<고려거란전쟁>은 현종이 김은부의 딸을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원정왕후가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도왔다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지만, 이런 상상은 실제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은 작가의 특권이지만, 이 경우에는 상상력이 역사에 대한 이해를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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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