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영화는 20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묘사를 시각화한 풍경과 전개를 펼친다. 역사책 혹은 미디어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객관을 수용하기보다는 대도시의 '시민' 개개인이 단독자로서 자신이 접한 체험에 입각해 각자의 주관으로 품어내는 개별적 시선이 세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수많은 평행세계 혹은 소우주의 시공간이 화면을 점유하는 것이다.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꾸준히 시도되는 영상문학 혹은 에세이 스타일의 접근법과 궤를 같이 하지만 장편 전체를 그렇게 구현하는 건 특기할 만한 도전이다.
그렇게 구현해낸 <서바이벌 택틱스>는 과연 관객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걸까? 그저 세상에 단일한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김빠지고 차가운 확인에 그치거나, 혹은 그런 시각을 차용한 미스터리 분위기 효과를 끝까지 추구하려는 걸까? 어떤 의미와 태도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남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관객은 다시 질문을 던질 테다. 그런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단서는 사건의 극적 전개나 대사로 확인되는 지문이 아니라 영상예술에 맞게 제시된다.
음악이 꽤나 중요한 지점마다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대미를 장식하는 재즈 아티스트 '사선(Saseon)'의 곡 'Care'가 의미심장하다.
온전했던 시절에 눈 부셨던 시간이 참 억울할 만큼 짧아
내가 아니면 누가 당신을 이해할까 지금의 당신을
누군가 먼저 가야하면 우리는 함께 떠나야해
미련을 머금고 붙잡혀 있었던 이보단 나은 곳에
힘없는 그대 손을 내 손에 맡기면 돼 이제 다 끝나가
아티스트의 곡 배경설명은 대충 이렇다. 텔레비전에서 장기간 투병생활 중인 남편과 간호하는 아내를 보고 수발에 지쳤고 겉보기엔 건조한 관계이지만 서로 함께 하려는 애절한 감정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뭔가 실마리를 얻으러 갔지만 원하던 건 알지 못한 채 성령과 우호가 목격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저 곡의 분위기가 아니라 영화가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분명히 주인공들에게 감춰져 있던, 그리고 그들이 계속 갈구하던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주던 그 풍경과 엔딩 곡의 배경은 고스란히 겹쳐진다.
미스터리를 증폭시키지만 정작 진실은 저 너머에 묻힌 채인, 우호가 성령에게 전달한 편지-성희가 죽기 직전 받은 것이지만 보낸 이는 알 수 없는- 의 내용 역시 영화의 주제의식을 몰래 간직한 보물찾기의 소재다.
해당 편지 내용의 일부는 홍희정 소설가의 단편 <앓던 모든 것>에서 발췌 수록한 것이라 한다. 평생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거쳐온 생애주기를 지나 73세 황혼이 된 주인공이 생의 의미를 찾고자 늘그막에 시를 쓰고 스포츠센터에서 아쿠아 로빅을 배우던 중 병명을 모르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21살 청년에게 사랑을 느끼며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남들이 당연히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화자, 어려움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긍정이 소박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존전략'으로 출발한 영화의 이야기는 비록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현실의 삶이지만 다정함과 연민이 그 불투명한 세계 속에서 버티고 나아가는 데 핵심이란 소박한 진심을 전하려 한다. 이 영화가 과잉된 형식 실험에 머물렀다고 단견하는 것보다 감독이 군데군데 보물찾기처럼 대놓고 드러낸 그런 장치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감독의 진심과 관객의 진심이 조응해 세상을 견딜 온기로 발화되기를 기원하며.
<작품정보> |
서바이벌 택틱스 Survival Tactics
2021│한국│드라마
2024.02.21. 개봉│114분│12세 관람가
감독 박근영
주연 성령(윤성령/윤성희 역), 최원용(이우호 역)
출연 기윤(정철 역), 계영호(충권 역), 손예원(서이 역), 최중재(우호 부 역),
이재원(헬스남 역), 아인(두부 역), 안영모(안경사 역), 이주용(블랙박스 판매남 역)
우정출연 장준휘(억울한 남자 역)
제작 요지경필름
배급 필름다빈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시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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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