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영화는 물리적 상영시간의 거의 2/3 동안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모호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선보인다. 개별 캐릭터의 동선이 나열되는 게 아니라 서로 조응하거나 교차되면서 마치 자석이 끌었다 밀어냈다 하는 것처럼 섞이거나 혼합되는 방식이라 관객은 어디까지가 객관적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상상 혹은 가상의 영역인지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구조를 전제한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기본적인 설정 판을 얼핏 혼란스럽게 펼쳐낸 뒤 좀 더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구조를 취하는 후반 1/3 또한 장르적 특징, 즉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뭔가 후련한 결말을 마치고 싶은 관객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지점으로 흘러간다. 주인공들이 쫓는 실체적 진실은 이들이 어긋나고 만나는 과정에서 도구적으로 활용되지만 결정적 요소로 고려되는 것 같아뵈진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허탈해하다가도 이들이 비밀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과 막간에 툭툭 새어 나온 것처럼 들리는 대화를 곱씹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상업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영화의 주제와 의도를 비로소 발견하는 셈이다.
당황스러운 상황 전개에 혼란해 하다 모호한 결말에 당혹해졌을 관객은 이 영화가 전하려는 게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다 답을 찾게 될 테다. 즉 영화 속 숨겨진 함의와 주제를 관객이 머릿속에서 자신이 체험한 근거와 상상을 통해 (마치 영화 속 주인공들이 수행하는 것과 동일한 절차로) 여정을 수행하는 식이다. 언니이자 조사 대상이던 '성희'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출발한 여정에서 '성령'과 '우호'는 동일한 고민을 풀어내고자 도전하는 동업자로서, 마치 홈즈와 왓슨처럼 (남녀 사이의 사적 감정과는 무관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와 공감에 닿게 된다.
그 이전까지 영화 속 인물과 상황은 내내 어긋난다. 풍자로서의 '삑사리'라기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 불가능 상황에 초점이 맞춰진 서술이다. 고인인 성희는 물론, 성령이 구조해 임시보호 중인 검정색 리트리버,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리 없는 그만의 '잔업'을 수행하는 '우호' 모두 평범하고 전형적인 척도로 평가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성희는 여러 개의 이유로 미움과 원한을 샀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딱히 사고를 쳤거나 악의를 갖고 타인을 괴롭힌 것 같진 않다. 그가 지녔던 특유의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과의 조합에서 묘하게 어긋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별로 미운 짓 한 것도 아닌데 기묘하게 엇나가는 이물감 때문에 고인을 혐오하고 원한을 품었다고 한다. 혹은 이상할 만큼 집착하기도 했음이 드러난다. 그저 평범한 개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와중에 그가 얼마나 다양한 단면으로 개별의 타인들에게 이미지화되었는지 관객은 하나둘 확인하게 된다.
'우호'는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다. 그는 아마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한 뒤 처리과정에서 독학한 지식과 경험으로 생계를 해결할 겸 보험조사원이 되었을 테다. 영화 내내 그의 업무능력이 탁월한 게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증명된다. 하지만 정작 업무처리에 탁월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보험조사원의 숙명을 소화하기엔 그는 마음이 여리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고를 감수한다. 성령도 왜 이렇게 자기 언니 일에 마음을 쓰냐며 물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우호는 동시에 자신이 조사해 불이익을 줬던 교통사고 당사자에게 지속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처지다. 너 때문에 신세 망쳤다며 그 당사자는 집요하게 스토킹하듯 우호를 뒤쫓으며 괴롭힌다. 그리고 식물인간 상태의 부친을 수발하는 스트레스는 우호로 하여금 관객이 보기엔 위태로운 행태를 연상하게 만드는 경우를 거듭 노출한다.
그렇게 영화는 한 길 사람 속을 투시하고 평가한다는 게 지극히 난해한 일이라는 것을 표본추출하듯 관객 앞에 선보인다. 죽은 성희건, 조력자 우호건, 주인공이라 할 성령이건 그들이 보이는 행태는 일관되지 않고 산만해 보일 만큼 울퉁불퉁하다. 관객은 대체 이 캐릭터들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쉽사리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 표상의 결정체라 할 건 성령이 돌보는 개의 존재다. 전단지를 보고 딱히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던 성령이 개를 구조하지만 나중에 개 주인에게서 온 문자는 그를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대체 자신이 데려온 개의 정체는 무엇일까? '맥거핀' 효과처럼 이 검정색 리트리버는 비현실적 존재감으로 변환된다. 사회적 통념으로 규정하는 객관적 진실이란 무엇일까 질문은 계속된다.
결국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영화 <서바이벌 택틱스>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영화는 20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묘사를 시각화한 풍경과 전개를 펼친다. 역사책 혹은 미디어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객관을 수용하기보다는 대도시의 '시민' 개개인이 단독자로서 자신이 접한 체험에 입각해 각자의 주관으로 품어내는 개별적 시선이 세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수많은 평행세계 혹은 소우주의 시공간이 화면을 점유하는 것이다.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꾸준히 시도되는 영상문학 혹은 에세이 스타일의 접근법과 궤를 같이 하지만 장편 전체를 그렇게 구현하는 건 특기할 만한 도전이다.
그렇게 구현해낸 <서바이벌 택틱스>는 과연 관객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걸까? 그저 세상에 단일한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김빠지고 차가운 확인에 그치거나, 혹은 그런 시각을 차용한 미스터리 분위기 효과를 끝까지 추구하려는 걸까? 어떤 의미와 태도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남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관객은 다시 질문을 던질 테다. 그런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단서는 사건의 극적 전개나 대사로 확인되는 지문이 아니라 영상예술에 맞게 제시된다.
음악이 꽤나 중요한 지점마다 활용되지만 무엇보다 대미를 장식하는 재즈 아티스트 '사선(Saseon)'의 곡 'Care'가 의미심장하다.
온전했던 시절에 눈 부셨던 시간이 참 억울할 만큼 짧아
내가 아니면 누가 당신을 이해할까 지금의 당신을
누군가 먼저 가야하면 우리는 함께 떠나야해
미련을 머금고 붙잡혀 있었던 이보단 나은 곳에
힘없는 그대 손을 내 손에 맡기면 돼 이제 다 끝나가
아티스트의 곡 배경설명은 대충 이렇다. 텔레비전에서 장기간 투병생활 중인 남편과 간호하는 아내를 보고 수발에 지쳤고 겉보기엔 건조한 관계이지만 서로 함께 하려는 애절한 감정을 담은 곡이라고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뭔가 실마리를 얻으러 갔지만 원하던 건 알지 못한 채 성령과 우호가 목격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저 곡의 분위기가 아니라 영화가 그저 무미건조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분명히 주인공들에게 감춰져 있던, 그리고 그들이 계속 갈구하던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주던 그 풍경과 엔딩 곡의 배경은 고스란히 겹쳐진다.
미스터리를 증폭시키지만 정작 진실은 저 너머에 묻힌 채인, 우호가 성령에게 전달한 편지-성희가 죽기 직전 받은 것이지만 보낸 이는 알 수 없는- 의 내용 역시 영화의 주제의식을 몰래 간직한 보물찾기의 소재다.
해당 편지 내용의 일부는 홍희정 소설가의 단편 <앓던 모든 것>에서 발췌 수록한 것이라 한다. 평생 근현대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거쳐온 생애주기를 지나 73세 황혼이 된 주인공이 생의 의미를 찾고자 늘그막에 시를 쓰고 스포츠센터에서 아쿠아 로빅을 배우던 중 병명을 모르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21살 청년에게 사랑을 느끼며 일어나는 일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남들이 당연히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화자, 어려움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긍정이 소박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다.
그렇게 '생존전략'으로 출발한 영화의 이야기는 비록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은 현실의 삶이지만 다정함과 연민이 그 불투명한 세계 속에서 버티고 나아가는 데 핵심이란 소박한 진심을 전하려 한다. 이 영화가 과잉된 형식 실험에 머물렀다고 단견하는 것보다 감독이 군데군데 보물찾기처럼 대놓고 드러낸 그런 장치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감독의 진심과 관객의 진심이 조응해 세상을 견딜 온기로 발화되기를 기원하며.
<작품정보> |
서바이벌 택틱스 Survival Tactics
2021│한국│드라마
2024.02.21. 개봉│114분│12세 관람가
감독 박근영
주연 성령(윤성령/윤성희 역), 최원용(이우호 역)
출연 기윤(정철 역), 계영호(충권 역), 손예원(서이 역), 최중재(우호 부 역),
이재원(헬스남 역), 아인(두부 역), 안영모(안경사 역), 이주용(블랙박스 판매남 역)
우정출연 장준휘(억울한 남자 역)
제작 요지경필름
배급 필름다빈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시선상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