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가 그려지는 <닥터 슬럼프>
JTBC
내가 우울하다니!
부산이 고향인 하늘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가 재밌었던 아이였다. 덕분에 늘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였고 가족들은 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가족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화장실 갈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를 한 하늘은 서울의 한 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공부로 최고인 정우를 만난다. 둘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부해 각자 의대에 진학한다.
의사가 된 하늘은 이젠 마취과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펠로우로 일하며 온갖 모욕적인 언행을 받아낸다. 하지만, 목표를 위해 참아내고 또 참아내다 횡단보도에서 쓰러졌던 날. 하늘은 자신을 달려오는 트럭을 보고 '차라리 죽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하늘은 몇 번을 망설이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고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이후 드라마는 하늘이 우울증을 마주하는 과정을 꽤 섬세하게 보여준다.
첫 반응은 부인이었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오던 날 하늘은 약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며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애써 다시 꺼내온 약은 서랍 깊숙이 숨겨 놓는다. 그러면서 "내가 우울증인 거 자체가 자존심이 상해", "나 정말 대단했는데 내가 우울증이라는 게, 내 마음이 병들었다는 게 말이 돼?"라며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다음엔 후회가 찾아온다. "이 나이 먹도록 아는 노래 하나도 없다는 게 한심해서. 해본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게 정상적인 삶이냐. 나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을까."(3회) 그리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동안 공부하고 일하느라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재밌게 살아보기 위해 한 것들이 전혀 재밌지 않자 하늘은 또 다시 자괴감에 빠지며 이렇게 말한다.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 꼴 보기 싫어."(4회)
하늘의 이런 모습은 꽤나 익숙한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마음이 아프다고 진단을 받았을 때 이를 나약함의 징표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내가 싫어서 더 힘들어한다.
지나친 위로와 응원은 오히려 독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마음이 아플 때 이를 받아들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하늘의 주변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하늘의 가족은 하늘을 '자랑거리'로 여긴다. 하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엄마 월선(장혜진)은 특식을 준비하고 틈만 나면 식당 손님들에게까지 딸이 의사임을 말하고 싶어 한다(2회). 하늘의 엄마는 자신의 꿈을 딸에게 투사하고, 딸을 다그쳐 키워온 엄마가 아니다. 그럼에도 딸의 성공에 모든 것을 얻은 듯 기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공(그것도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성공)=행복'이라는 잘못된 공식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이런 공식 속에 살아온 하늘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가 되었고 조금만 더 버티면 의대교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찾아온 우울증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을 테다. 성공의 길을 가고 있으니 당연히 행복해야 할 것이라 믿었을 테니 말이다. 하늘에게 우울은 단지 아픈 게 아니라 '실패'의 의미까지 포함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울을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