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신생대의 삶>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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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설정의 표현과 수용이 양쪽에서 동시에 가능한 것은 극 중의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는 공간은 단순히 이들이 머물고 라포를 형성하는 자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의미적으로 조금 더 큰 장소, 이 작품으로 따지자면 리투아니아라는 도시 전체, 아니 조금 더 나아가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 모두가 해당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를 강조던 바 있다. 가장 처음에서 민주를 비추던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물의 얼굴을 비추는 대신 그녀가 발을 딛고 있는 배경에 집중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호수의 수면 위로 비치는 모습 등이 영화의 프레임 전체를 채운다. 마치 극의 배경이라는 것이 인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 안에 존재하는 인물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는 앞서 이야기했던 임정환 감독의 공간에 대한 해석과도 맞닿는다. 우리 모두가 신생대에 속하며 그 시간대를 형성했던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이듯이,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셀 수 없는 우리가 태어나고 존재하고 다시 떠나는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 공간에 해당된다. 물론 작품 안에서는 인물들이 숨 쉬는 배경이다. 그런 맥락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리투아니아라는 공간은 이 작품을 직립시키기 위해 반드시 이해시키고 전달해야 하는 요소이며 극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전경은 이를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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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말하는 공간은 아득한 시간 위에 세워지는 것이나 다름없고, 누군가의 생사가 끊임없이 반복된 결과인 셈이다. 영화 곳곳에 삶과 죽음에 대한 소스가 남겨져 있는 이유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 조금은 정적이고 차분한 쪽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 전체의 리듬이 하강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새벽 배우가 주연을 맡은 민주는 여러 장면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술에 취해 상기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의 터져 나올 듯한 행복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반복되는 상황을 비틀어 소소한 웃음을 지어내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후반에 놓여 있는 죽음에 대한 상념과 대비되며 서로의 의미를 일으켜 세우는 식이다.
오랜만에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난 기분이다. 인물의 이야기를 따르는 일이 하나의 서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 뒤를 따르게 된다는 것이 말이다. 극의 전체와 일부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의미가 남게 되는 것 역시 그렇다. 하나의 서사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그 서사의 틀을 형성하는 일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감독의 연출이 가진 미학이 되살아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시간의 아득함에 대해 생각하면 가끔 외로워지기도 하지만 사라짐과 고난이 비단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던 감독의 마음이 오롯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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