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슬리에게> 스틸컷
영화사 진진
<레슬리에게>는 굴러들어 온 행운을 그대로 차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아들과 엄마와 비슷한 설정이 낯설지 않다.
<힐빌리의 노래>가 마약 중독자가 된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라면, <레슬리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의 시선을 따라 처절하게 전개된다. 몇 번이고 재기할 기회를 맞지만 술 때문에 망가지는 무지함을 보인다. 술은 이성을 앗아갔고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마저 멀어지게 할 뿐이었다.
아들의 햇살 같던 유년기를 망친 대가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잘 곳을 찾아 푸석한 오늘과 마주해야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버렸고 미래는 아득하기만 했다. 지난날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과거를 돌이키면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또 술을 찾았다. '그냥 될 대로 돼라'는 자포자기는 제일 빠르고 쉬운 처방전이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게 되고 처량한 신세가 한탄스러워 한두 잔씩 늘어나 삶을 좀 먹는다. 외롭고 쓸쓸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라는 갖은 이유로 음주를 정당화한다. 십중팔구 자신은 중독자가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반복하게 된다. 술을 마신 쾌감에 중독되어 의지는 더욱 약해진다.
알코올 중독은 한 잔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단 한 잔으로 공든 탑이 무너지니, 재발은 걷잡을 수 없이 독이 된다. '한 잔은 너무 많지만 천 잔은 너무 적다'라는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의존자 모임) 관련 책자 속 글귀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재발하면 아무리 술을 퍼마셔도 만족하지 못해 더 깊은 중독에 빠진다.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열망이 있으면 금주는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서는 어려우나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알코올 중독이다. 레슬리는 모텔 주인 스위니의 따뜻한 보살핌에 차츰 회복된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풀고 다시 맞출 마지막 갱생의 기회인 거다. 많이 힘들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정신을 붙잡고 힘겹게 싸워간다.
영화는 사실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이야기다. 하지만 독립영화부터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력을 덧붙여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영화부터 시작해 단역, 조연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변신해 온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높게 평가한다. 비슷한 캐릭터를 통해 다작하기보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 같은 모습은 '레슬리'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나 날개를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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