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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뉴요커, 하루아침에 바뀐 인생... 부자일 때 몰랐던 '행복'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니콜라스 케이지의 휴먼 판타지 <패밀리맨>

23.11.30 10:42최종업데이트23.11.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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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 최고의 배우였던 박중훈이 미국 진출을 위해 국내 활동이 뜸해졌을 때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1990년대 중·후반 충무로를 지배한 배우는 단연 한석규였다. 한석규는 1995년 <닥터봉>을 시작으로 <은행나무 침대> <넘버3> <초록물고기> <접속> < 8월의 크리스마스 > <쉬리> 등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 명작들에 대거 출연했다. 특히 그 시절 한석규의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한국보다 제작되는 영화의 수가 훨씬 많은 할리우드에서는 한석규처럼 독보적인 '넘버1'으로 군림한 배우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니콜라스 케이지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를 풍미한 배우였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5년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배우 케이지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더 록>을 시작으로 대중지향적인 배우로 변신했다.

당시 케이지는 높아진 출연료와 이름값 만큼 <더 록>과 <콘 에어> <페이스 오프> <식스티 세컨즈> <윈드 토커> <내셔널 트레저> 등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하지만 케이지는 대작들 사이사이에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가족 드라마 장르에도 간간이 출연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사랑과 성공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브렛 래트너 감독의 판타지 드라마 <패밀리맨>이 대표적이다.
 
 <패밀리맨>은 6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1억2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패밀리맨>은 6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1억2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한맥영화(주)
 
시간도 나이도 영혼도 바꾸는 판타지 영화

사실 현실에서는 당사자가 엄청난 결심과 함께 큰 용기를 내지 않는 한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에 큰 변화를 주기 힘들다. 특히 현실의 허들은 언제나 우리가 낼 수 있는 힘보다 조금씩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설정만 살짝 넣어줘도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상황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다.

대배우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페니 마셜 감독의 영화 <빅>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던 13세 소년 조슈아가 키가 크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더니 다음 날 서른 살 어른으로 변하는 설정의 판타지 코미디 영화다.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1억 5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빅>은 장난감 백화점의 대형건반으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수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됐다.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1989년에 개봉한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지금은 세계 최고의 킬러 존 윅을 연기한 배우가 된 키아누 리브스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단짝친구인 빌과 테드가 역사 과목에서 낙제를 면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을 현재로 데려 온다는 내용의 판타지 코미디다. 1991년 속편이 개봉했고 2020년에는 중년이 된 빌과 테드가 등장하는 3편이 제작되기도 했다.

사실 시간여행 같은 판타지 요소는 극적인 효과 때문에 멜로장르에서 자주 쓰이곤 한다. 2011년 칸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고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가 포함된 멜로영화다. 다만 주인공 길 펜더(오웬 윌슨 분)가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인 만큼 근현대 서양예술문학에 무관심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국 영화 중에는 2019년에 개봉했던 박성웅, 진영 주연의 코믹 판타지 <내 안의 그놈>이 조목두목과 고등학생의 영혼이 바뀌는 내용을 가진 영화였다. 10~20대의 젊은 관객들을 겨냥한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가 그렇듯 <내 안의 그놈> 역시 평론가들에겐 이구동성으로 혹평을 받았지만 전국 191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또한 VOD를 비롯한 2차 시장에서도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열린 결말'이 관객들에게 주는 묘한 여운
 
 <패밀리맨>은 마지막 두 주인공의 대화내용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패밀리맨>은 마지막 두 주인공의 대화내용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지 않는다.한맥영화(주)
 
자신을 붙잡는 여자친구 케이트(테아 레오니 분)를 뒤로 하고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 잭(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13년 후 뉴욕에서 손 꼽히는 투자전문기업의 사장이 됐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아침에 직원회의를 소집하고 홀로 아파트에서 잠이 든 잭은 다음날 아침 처음 보는 집에서 잠을 깼다. 배 위엔 헤어진 케이트가 누워 있었고 이내 아이들과 반려견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뉴욕의 아파트와 회사에서는 노숙자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 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잭은 뉴욕 월스트리트의 화려한 생활은 온데간데 없이 인권 변호사 케이트, 그리고 두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남편의 인생을 살게 됐다. 하지만 잭은 첫째딸 애니(맥켄지 베가 분)를 매일 차로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장인의 타이어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또 다른 세계에서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화려했지만 외로웠던 뉴욕에선 느껴보지 못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잭은 펑크난 타이어를 수리하러 온 옛 회사의 회장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뽐내며 임원으로 스카우트 됐다. 하지만 케이트는 뉴욕으로의 이사를 원하지 않았고 잭도 많은 고민 끝에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다. 소파에서 잠이 든 잭은 다시 뉴욕의 아파트에서 눈을 뜨고 케이트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돼 파리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잭은 공항에서 케이트를 붙잡았고 두 사람은 공항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사실 <패밀리맨>에서 가장 중요하고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부분은 잭과 케이트가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마지막 대화내용이었다. 하지만 브렛 래트너 감독은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내용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영화를 끝냈다. 영화 속에서 잭과 케이트의 결말을 보여주기 보다는 관객들이 각자 영화가 주는 여운을 느끼면서 두 사람의 미래를 상상해 보라는 래트너 감독의 배려(또는 심술)였다.

국내에서 2000년 12월 30일에 개봉한 <패밀리맨>은 서울관객 20만 명을 기록하면서 그렇게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N포털사이트 평점 9.27점, D포털사이트 평점 8.8점이 말해주듯 <패밀리맨>은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영화였다. 특히 칙칙하고 삭막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해 따뜻한 크리스마스 당일을 배경으로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더욱 잘 어울리는 영화다.

나보다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내
 
 티아 레오니가 연기한 케이트는 모든 남성들이 좋아할 이상적인 아내의 전형을 보여줬다.
티아 레오니가 연기한 케이트는 모든 남성들이 좋아할 이상적인 아내의 전형을 보여줬다.한맥영화(주)
 
지금은 만 57세의 장년배우가 됐지만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0년 30대 초·중반 시절의 테아 레오니는 할리우드의 숨은 미녀배우로 유명했다. <나쁜 녀석들>의 살인사건 목격자 역으로 주목 받은 레오니는 1998년 <딥 임팩트>의 기자를 거쳐 <패밀리맨>에서 비영리 인권변호사 케이트를 연기했다. 케이트는 동네 모든 남자들이 동경할 정도로 미모가 뛰어나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잭에게 선물을 줄 만큼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도 끔찍한 아내다.

잭이 다른 세계에서 다니던 투자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가자고 했을 때도 케이트는 반대의사를 밝히면서도 "당신이 정말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어디서 사는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케이트는 항상 자신이 아닌 '우리'를 선택했다. 잭 역시 그런 케이트의 마음에 크게 동화돼 공항에서 솔직한 고백으로 파리로 떠나려는 케이트와의 '커피타임'을 얻어냈다.

지금이야 MCU의 워머신으로 유명하지만 돈 치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90년대에도 <부기나이트> <볼케이노> <조지 클루니의 표적> 등에 출연했던 돈 치들은 <패밀리맨>에서 잭에게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일종의 천사 같은 존재로 출연했다. 돈 치들은 <패밀리맨>에서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캐릭터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패밀리맨 브렛래트너감독 니콜라스케이지 테아레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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