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으로>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짧지만 화려했던 패트릭 스웨이지의 전성기
1952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스웨이지는 발레리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비롯해 다양한 춤을 배우다가 1979년 배우로 데뷔했다. <레드 던>과 <아웃사이더>,<지옥의 7인>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던 스웨이지는 1985년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 <남과 북>에서 주인공 어리 메인을 연기했다. <남과 북>은 국내에도 방영되면서 스웨이지의 얼굴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패트릭 스웨이지라는 배우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영화는 1987년에 개봉해 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1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더티 댄싱>이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춤과 음악을 통해 꽃 피는 두 남녀의 고난과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 <더티 댄싱>에서 댄스교사 자니 캐슬을 연기한 스웨이지는 단숨에 섹시스타로 도약하며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부쩍 끌어 올렸다.
<더티 댄싱>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하던 스웨이지는 1990년 또 한 편의 '인생작'을 만났다. 199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각본상 수상작이자 세계적으로 5억57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던 판타지 로맨스의 명작 <사랑과 영혼>이었다. <사랑과 영혼>은 국내에서도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153만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스웨이지는 <사랑과 영혼> 이후 곧바로 떠오르는 신예스타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폭풍 속으로>에 출연해 '흥행 2연타'에 성공했다. 1992년 롤랑 조페 감독의 <시티 오브 조이> 역시 흥행성적은 다소 아쉬웠지만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스웨이지는 높은 이름값에 비해 연기 폭이 넓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이는 작품선정에 있어서 꾸준히 걸림돌로 작용했다. 실제로 스웨이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더 이상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
2003년 <더티 댄싱2>와 2004년 <더티 댄싱-하바나 나이트>에 출연하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스웨이지는 2008년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스웨이지는 치료 중에도 드라마 <비스트>에 출연하는 등 병마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2009년9월 향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웨이지는 생전 술은 즐기지 않았지만 40년 이상 흡연을 했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폭풍속으로>, 형사물과 스포츠물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