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리마스터링 스틸 이미지
㈜에이썸 픽쳐스
여죄수에게 주어진 며칠 간의 외출
더없이 사랑했던 왕징과의 관계는 그녀의 삶 전체를 비틀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왕징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 죄인의 신분으로 그를 다시 보는 애나의 마음 또한 착잡하기 그지없다. 쌓인 시간으로 덮였을 뿐, 정리되지 않은 관계를 그들은 마주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하지도 못한다.
훈의 이야기도 가관이다. 훈은 여자를 상대하고 돈을 받는, 쉽게 말해 미국 한인사회를 휩쓸고 다니는 제비다. 최근에 한 여자를 깊이 만났지만, 그녀의 남편이 훈을 의심한 탓에 도망치기에 이른 것이다. 막무가내인 남편이 사람을 사서 훈을 죽일 거라는 얘기까지 도는 모양, 하지만 훈은 특별한 심각성은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세상 무엇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훈 앞에 세상 모두가 무겁기만 한 애나가 나타나고 둘은 예고된 관계로 향해간다. 시애틀에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 애나를 우연히 마주한 훈은 빚을 갚고 시계를 받는다. 둘은 함께 시애틀의 밤을 활보하며, 기약 없던 사건들을 운명처럼 마주한다. 외로움과 호기심 사이, 서로에게 차츰 젖어드는 모습이 여느 남녀처럼 애처롭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