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수프스틸컷
BIAF
인생을 말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일까. 제25회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단편 국제경쟁 섹션 C묶음으로 소개된 <콜드 수프 Cold Soup>는 10분이면 충분하다고 답하는 작품이다. 신변잡기를 떠들기도 부족한 10분의 시간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그 버거운 과제를 이 짧은 애니가 해내는 것이다.
영화는 한 남자의 아내로 평생을 산 여자의 이야기다. 어여쁜 그림체로 그려진 집과 가구들, 식기를 비롯한 온갖 물건과 달리 이 애니 속 사람은 검은 선으로 경계 지어진 하얀 여백으로 표현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넷, 대부분은 남편과 아내다.
남편은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신문을 본다. 집 밖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이따금 제 성이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면 아내를 때린다. 아내는 결혼 이후 아주 오랫동안 남편을 두려워했다. 자주 맞으면서도 남편이 자식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막내 아들까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서야 제 삶을 돌아본다.
여자는 아들과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교외에 집을 구하고, 그곳으로 가구며 집기를 하나씩 옮기기 시작한다. 그 많은 물건이 사라지는 동안 남편은 오로지 병 하나의 빈자리만 눈치 챘을 뿐이다. 아내는 제가 병을 깨뜨렸다고 둘러대고 남편은 그 부주의함에 손찌검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는 남편을 영영 떠나버린다.
짧고 건조한 10분 남짓의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관객은 영화 속 한 여자의 생애를, 그녀가 대표하는 매 맞는 여성들의 삶을, 국경을 넘어 공유되는 착취와 지배의 치졸한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포르투갈 작가 마르타 몬테이루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담담하지만 짓눌린 목소리로 이 같은 비극을 그림 위에 재현한다. 선으로 그려질 뿐 색채도 내실도 갖지 못한 인간의 형체가 지켜보는 이를 눈물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