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노센트>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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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의식을 본유관념으로 타고나지 않지만, 선의 진영에 속한 아이들이 보이는 큰 공감력과 이타심을 감안하면 나아가 예수의 비유에 설득력이 있다는 역설에 도달하게 된다. 친밀함과 이해관계가 없어도 약자와 함께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였지만, 아이의 범주 내에선 충분히 용인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실천이 아닐까.
마침내 보그트 감독의 윤리학 탐색은 나름의 성과를 거둔다. 윤리학의 제반 입장을 두루 보여주며 하나의 바람직한 가치를 제시한다. 선이 악을 이긴다. 식상한 듯 하지만 불가피한 이 결론은 사실 어느 정도 입증된 공리이다. 만일 선이 악을 이기지 못했다면, 지금의 세상이 과거보다 더 나빴을 테니까. 시간이 흐르며 인간 세상은 그것이 만족스럽지 못할지언정 어쨌든 선의 몫을 키웠다.
할리우드영화의 결말인 듯 아닌 듯
선과 악의 대치 속에 선이 승리하는 해피엔딩은 구체 표현양식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낼 수 있지만 할리우드영화에서 애호하는 문법이긴 하다. 마지막 대결 장면 또한 모종의 어벤저스 스토리라고 할 만하다. 상투적인 결말에 어벤저스 구도라는 데서 진지한 탐색의 결말을 허황하게 받아들일 관객이 없지는 않을 법하다.
생각해 보면, 삶이 상투적이고 식상하듯 그 삶에 기반한 윤리학이란 것 또한 그럴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윤리학을 본격 탐구한 이 영화 또한 태생적으로 그런 측면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할리우드영화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는 점은 차이이고, 또한 같은 결론이라도 도출하기까지 진지하게 공을 들였다면 결론도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델마>처럼 <이노센트>에 마법이 등장한다. <델마>가 기성 사회 문법에서 악인 해피엔딩이라면 <이노센트>는 기성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한 해피엔딩이다. 윤리학은 기성사회의 학문이며, 마법이 동원된 호러라는 것이 윤리학을 해부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색다른 호러무비가 가능했지 싶다. "관습적인 것들을 완강히 거부하는 신선한 스릴러"(L'Humanite)라는 평은 그 자체로 정확한 진단이지만 정확한 이해를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철학도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이노센트>가 보여준다.
안치용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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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