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일> 스틸컷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
"나를 찾으려거든 술집으로 오라"는 쪽지를 하숙집에 붙여놓고 대낮부터 막걸리를 푸고 있는 억만. 옆자리의 늙수그레한 막노동자를 하대하며 자신을 상찬하는 억만. 이래 봬도 수석으로 고교 나왔고, 대학까지 졸업한 수재임을 강조하는 억만. 하지만 억만 역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떠도는 무직자 신세에 빈털터리 배고픈 청춘에 지나지 않는다.
억만이 자리한 술집의 벽면을 채우고 있는 낙서가 그 시대를 살짝 드러낸다.
"종달새처럼 즐겁게", "태양처럼 뜨겁게"
"냇물처럼 꾸준하게", "망각이란 잊어버리는 것이다"
술 먹는 동안 청춘들은 즐겁고 뜨거우며 꾸준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예찬했으리라!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종달새처럼 즐거운 청춘! 뜨뜻미지근한 청춘이 득시글거리는 풍요의 21세기 청춘과 달리 열기로 가득한 청춘들! 자신에게 제기한 목표를 향해 냇물처럼 꾸준히 정진하겠다는 의지! 하지만 각성의 시간이 찾아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종달새와 태양과 냇물 같은 자연물을 빗대서 자기네의 내면을 드러낸 청춘들이 도달한 결론은 차마 어둑하고 우울한 것이었다. "망각이란 잊어버리는 것이다." 사전에 나오는 어휘 풀이처럼 허망하게 되풀이되는 구절! 즐거운 종달새도, 뜨거운 태양도, 꾸준한 냇물도 결국에는 잊어버려야 마땅한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1960년대 후반 한국 사회 아니었는가?!
나이 어린 식모를 두고 살아가는 규제는 오늘 하루만 벌써 여섯 번째 욕탕에 들어가 있다. 휴일에 나가봤자 너 같은 실업자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일밖에 없어서 목욕하며 시간을 죽인다는 규제! 피둥피둥한 몸에 기름기가 흐르는 규제는 허욱을 집으로 들이고, 규제를 기다리다 허욱은 규제의 지갑과 시계에 강렬한 눈길과 마음을 던진다.
살롱의 여인과 허욱의 질주
비어가는 양주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허욱의 눈길이 건너편에 혼자 앉아 있던 여인(안은숙)을 향한다. 여인의 술잔이 비어있다. 여인에게 술을 권하는 허욱. 그들이 조금씩 말을 섞고, 마음을 섞고, 마침내 그들은 차와 경양식을 파는 '아이엘 살롱'을 나와 거리로 나선다. 왕대폿집과 곱창집을 전전하면서 4차, 5차까지 술집을 찾아다니는 그들.
혀가 꼬부라지고 내장이 비틀리며 정신마저 아득해질 무렵 그들은 허욱의 외투를 담요 삼아 공사판 구석에 눕는다. 무엇이었을까?! 이들을 혼곤하게 취하게 하고, 끝없이 흔들리게 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여인이 말한 것처럼 휴일이 선사하는 무의미와 맹목이었을까?! 막힌 출구 때문에 냉정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여인의 몸을 탐하던 허욱의 육신과 정신을 후려갈기는 한 줄기 청량한 소리가 들린다. 밤 시각을 알리는 교회당 종소리가 그를 후려갈긴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여인의 말을 뒤로 하고 허욱은 뛰기 시작한다. 그와 오전 시간을 함께했던 지연을 향해 줄달음치는 허욱. 그를 맞이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망연자실한 얼굴에서 절망이 읽힌다.
휘청거리면서도 허욱은 그들을 벗어나 어둠이 지배하는 밤거리로 나가야 한다. 그를 맞이하는 지연 아버지의 분노에 찬 목소리와 거부도, 그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는 규제도 그를 결코 아프게 하지 못한다. 그는 물리적-육체적-정신적 충격이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양심의 가책마저 허욱을 떠나 흔들리며 허공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휴일>에 나타난 문제의식
실향민 출신 작가 이범선의 <오발탄>(1959)을 원작으로 한 유현목의 영화 <오발탄>(1961)에 그려진 가난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풍속도였다. 북에서 내려온 지주 집안 출신의 가장 철호와 그의 실성한 모친, 대학을 중퇴한 무직 동생 영호, 음대 출신 아내, 양공주로 살림을 보태는 막내 여동생 명숙에 이르는 처절한 가난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5.16 군사 정변으로 4.19 혁명을 부정하고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를 내세워 1965년 치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부도덕하고 더러운 베트남 전쟁 파병을 강행한다. 거기서 얻어낸 약간의 돈으로 경제성장을 꾀하지만, 이농(離農)과 서울 집중, 부익부 빈익빈은 악화일로였다. 넘쳐나는 청년 실업과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은 요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 끓는 청춘들의 욕망은 신분의 수직상승이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실현 같은 허망함으로 표현된다. 이 지점에서 이만희는 이 같은 허망한 욕망과 전혀 다른 길을 보여준다. 가난으로 꽉 막혀버린 청춘들의 인생 행로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더욱이 <휴일>은 단 하루 만에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과 인연을 밀도 있게 제시한다.
그래서 <휴일>에는 신파조의 애잔한 눈물이나 가슴 저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한없이 흔들리는 인물들의 눈동자와 허망한 대사와 넋두리, 환영처럼 스러져간 추억이 잠시 소환될 따름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우리의 가슴은 먹먹해지고 눈길은 씀벅거리지만 구질구질하거나 끈적거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우리가 허욱이나 지연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시대는 나름의 시대정신을 가진다. 권력자와 독재자가 주입하는 사이비 시대정신이 아니라, 시대를 끌어안고 싸우며 전진하는 살아있는 청춘들이 만들어가는 시대정신. 하지만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강고한 시대정신이 부재하다. 그것은 무력에 기초한 군사정권의 가혹한 지배와 폭정이 원인이다. 전위시인 김수영마저 지치고 우울해해야 했던 1960년대!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시대를 앓던 청춘들의 시대정신이 결석했던 암울한 1960년대를 자양분으로 1970년대에 마침내 시대정신이 만들어진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청학련 등이 결성되어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줄기차게 펼쳐갔던 저 빛나는 시대정신은 <휴일>에 그려진 무력하고 나약한 청춘들의 살과 뼈를 밑거름으로 배양된 것이다. 그러니, 1960년대를 아쉬워하거나 안타깝게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한다. '화양연화'는 언제든 우리 곁에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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