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개그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근성(허지원 분)은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이다. 공채 출신도 아니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제 몫은 다하기는커녕 자신의 일을 후배들에게 넘기기 일쑤. 그저 어떻게든 한 방을 크게 터뜨려 성공한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헛된 꿈만 갖고 있다. 인터넷 방송이 그중 하나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때때로 방송을 켜가며 남들 다하는 개인 방송으로 한몫 단단히 챙겨보려 하지만 현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인기 없는 채널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오랜만에 나간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종만(남연우 분)을 만나게 된 것.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분홍색 가발을 쓴 우스꽝스러운 콘셉트로 인기를 얻으며 큰돈을 벌고 있다는 그와의 만남은 근성에게 한줄기 빛처럼 여겨진다. 오래전 학창 시절의 가느다란 인연이지만 종만의 유명세를 통해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방송 역시 많은 시청자를 가진 채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전승표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개그맨>에는 지금 사회에 만연한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 개인 인터넷 방송과 같은 매체의 어두운 면모와 불편한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청자의 이목과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송출하고자 하는 그릇된 욕망. 어떤 방식으로든 인기를 얻고 돈을 벌어 개인의 성공을 이뤄내겠다는 맹목적인 의지가 근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진다. 누군가의 인생을 담보해서라도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인가? 영화는 처음의 비겁한 목적조차 잃어버리고 점차 몰락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비춰낸다.
02
"차라리 돈을 꿔달라고 그러지. 내 주변에도 그런 거 하는 애들 많은데 다들 금방 관두더라고. 돈 필요하면 그냥 배달이나 대리 같은 걸 해. 그런 게 훨씬 나아."
애초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심만 드러내며 접근하는 근성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도 않았을 종만의 말 한마디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합방을 통해 도움을 구했던 자신의 요청이 거절되고 무시당하자 술에 취한 근성이 학창 시절에 있었던 종만의 폭력을 방송을 통해 고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최근 유명해지기 시작한 인기 개그맨의 과거 폭로에 아무도 보지 않던 근성의 채널은 시청자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는 그의 폭로가 기사화되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건으로 덩치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취해있었던 한 사람의 주정과 폭로 사실에 대한 판단을 위한 사실적 근거는 전무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의 말 한마디에만 더 몰두할 뿐이다.
영화는 근성이 부정한 방식을 통해 속칭 '하꼬'(유명하지 않고 영향력이 적은)를 벗어나는 과정을 실제 스트리밍 방송의 포맷 그대로 표현해 낸다. 이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 역시 인터넷 방송 속 근성을 바라보는 시청자들 중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도록 유도하는 느낌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하나의 정확한 주제 의식 위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 인지하도록 하여 그 과정 전체를 다시 체험하도록 하게 만든다. 평소에 우리가 미디어와 매체의 흐름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소비하고 망가뜨리고 비난하는 행렬에 휩쓸리게 되는 것과 달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