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이곳 너머>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01.
오래전 자신의 땅을 작은 아빠 만식(김진수 분)에게 빌려줬던 영회(박가영 분)는 그의 시골집을 찾는다. 땅을 팔기 위해서는 도장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 철문까지 두드리며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잠시 후 만식의 집 대문이 열리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건 작은 아빠가 아닌 그와 결혼한 이주 여성 마이(유이든 분)다. 한국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 같은 그녀는 되려 영회를 내쫓으려 하고, 반대로 영회는 어떻게든 만식을 만나 도장을 받아낼 참이다.
이제경 감독의 단편 영화 <이곳 너머>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두 여성의 만남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5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을 갖고 있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주제들은 그리 가볍지 않다. 특히 극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등허리만 언뜻 내보이는 이야기들로부터 얻게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여러 서사를 붙들고 갈 수 없는 물리적 제한을 이겨내고자 하는 시도로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추측하는 과정 속에서 관객들의 상상을 통해 덩치를 키워가는 폭력의 그림자로부터 두 사람의 연대를 더욱 짙게 그리고자 하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었을 영회와 마이의 지나온 시간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가정 폭력은 장기간 점진적으로 높은 수위의 폭력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02.
"이제 어디로 가고 싶어요?"
영화의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영회와 마이의 대사를 통해 두 사람의 연대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감독은 두 사람이 처해있던 각각의 상황을 하나의 장면을 통해 연결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이전 장면을 통해 벌써 시도하고 있다. 마이의 여권을 갈기갈기 찢는 만식과 이를 지켜보는 영회의 얼굴 뒤로 흐릿하게 들려오는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오는 장면이 바로 그 지점이다.
이주 여성인 마이의 여권이 눈앞에서 찢기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회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극의 초반부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가 (그녀의 오른쪽 뺨에 난 상처와 더불어)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만든다. 두 사람의 연대는 이미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렇게 연결된 각각의 폭력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