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구부러진 선>의 한 장면.
넷플릭스
<신의 구부러진 선>의 구도는 전형적이다. 정신 병원에 입소한 환자가 자신이 사실 환자가 아니라 사립탐정이라고 주장하니, 병원장은 그녀가 아주 악질적인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 한다. 영화 전체를 뒤집을 만한 반전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소소하고 자잘한 반전이 끊임없이 나오니, 지루할 새가 없다. 재미없을 때가 없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알리스 굴드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유능하고 책임감 투철한 사립탐정으로 병원에서 일어난 미스터리 살인 사건 조사를 위해 많은 걸 속이며 잠입해 몰래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와 앞뒤가 착착 맞아 신뢰감 짙은 말솜씨를 듣고 있노라면 끌리지 않을 수 없고 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할 것 같다.
병원장 사무엘의 말을 들어 보면, 알리스 굴드는 아주 지능적이고 악질적인 정신 질환자로 그녀가 어지럽게 이리저리 주장하는 바들은 모조리 거짓으로 수렴한다. 이 사실과 저 사실, 이 거짓과 저 거짓을 교묘하게 짜맞춰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한 다음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높은 지능을 가진 정신 질환자가 자각이 있는 경우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데 사무엘이 말하는 알리스와 같으니 그쪽으로 기우는가 싶다가도, 사무엘이 병원 내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과 살인 사건을 덮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또 그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기가 막힌 건 어느 한쪽이 머리와 가슴, 그러니까 이성과 감성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50 대 50의 구도다.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두고두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 옛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부터 <셔터 아일랜드> <언세인> <히든 아이덴티티> <래치드> 등이 있다. 나아가 정신 질환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있는데 < 23 아이덴티티 > <블랙 스완> <테이크 쉘터> 등이 생각난다. <신의 구부러진 선>이 '재미'의 면에서 이 작품들과 겨룬다고 했을 때 당당히 상위권에 안착할 수 있을 정도다.
1970년대 후반 스페인은 비록 40여 년간 계속된 프랑코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사회가 상당 부분 바뀌었지만 여전히 독재의 잔재가 남아 있을 때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 많은 건 둘째치고 영화 속 알리스 굴드 같은 고지능 정신 질환자가 출현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독재는 가히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억눌러 사회가 상시적 병리 상태에 있게 한다. 그 상태가 갑자기 끝나면 개개인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른다. 대다수가 제대로 느끼지 못할 테지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알리스 굴드가 설혹 결국 정신 질환자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진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탐색해야 한다. 비록 영화는 그녀가 사립탐정인지 정신 질환자인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명의 주장으로 영화적 재미를 도출하려 하지만, 기저에는 그녀가 수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미스터리 살인 사건을 덮고자 용을 쓰는 원장의 행태가 자리하고 있다. 알리스의 상태가 어떤지와 별개로 사무엘 원장의 행태를 추적해 의도와 과정과 결과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선악이 애매모호한 듯하지만, 알리스가 정신 질환자라면 그녀의 파렴치한 짓거리는 악의 테두리에 둘 수 없고 사무엘의 경우 모든 걸 완벽하게 자각한 후 통제하려 하기에 악의 범주에 속한다. 사무엘은 정신 질환자들을 두고 '신의 구부러진 선'이라고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신의 구부러진 선'은 누구인지 반추해 볼 일이다.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 중 어느 누가 '신의 구부러진 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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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