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스틸컷
(주)트리플픽쳐스
시작하고 40분만에 시작되는 영화
영화는 한 순간 진전된다. 할 말이 있다며 돌아오면 대화를 나누자던 오토가 갑자기 죽어버린다. 돌연사다. 아내가 죽은 뒤 가후쿠는 다른 도시로 향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히로시마다. 가후쿠가 히로시마로 운전해 가는 길에서 영화는 뒤늦게 오프닝 크레디트를 꺼내든다. 40분 만에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히로시마에서 가후쿠는 연극을 준비한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다. 세계 곳곳에서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러 온다. 개중에선 오토가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을 함께 한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 분)도 있다. 그가 오토와 부정을 저질렀다고 가후쿠는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아니 그렇기에 그는 다카츠키를 캐스팅한다. 그에게 준 배역은 모든 배우 중 유일하게 그가 희망한 것과 다르다. 주인공인 바냐 역을 가후쿠는 다카츠키에게 맡긴다.
다카츠키가 가후쿠를 찾아온 것도, 가후쿠가 다카츠키를 캐스팅하고 주연을 맡긴 것도, 둘이 거듭하여 의미심장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다. 둘은 모두 오토를 사랑했고, 상대에게서 오토의 흔적을 느끼려 한다. 오토를 기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지만 상대를 질투하는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저는 알지 못하는 오토의 이야기를 다카츠키는 알고 있다. 가후쿠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생처럼 영화도 그대로는 머물 수 없다. 영화는 둘의 관계를 지나 거침없이 흘러간다. 연극은 조금씩 준비되어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연달아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그중 단연 흥미로운 관계가 있다. 가후쿠와 그의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다. 가후쿠를 초청한 이들은 그에게 운전사를 붙여준다. 직접 운전하며 대사를 연습하길 좋아하던 가후쿠지만 이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