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스틸컷
부천노동영화제
발 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등을 돌리는데
인간성을 위협하는 부조리를 그대로 방치하고 그로써 더욱 조장하는 관리자는 누구인가. 일자리를 앗아가고, 제로섬 게임의 비인간성을 내버려두는 관리자가 곧 자본주의 그 자체처럼 여겨질 즈음 영화는 가장 노력하는 인간이 삶을 포기하는 광경을 관객 앞에 내보일 뿐이다.
영화 속 인간들의 삶은 밀가루 포대처럼, 가스통처럼 버겁기만 하다. 관객에게까지 그 무게가 훅하고 덮쳐드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로제타에게만이 아니다. 그를 해고한 사장 역시 홀로 온갖 짐을 옮기다가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는 모습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내보인다. 그와 로제타의 관계가, 그와 리케의 관계가, 또 로제타와 리케의 관계가 서로 다르지 않다.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싸워서 겨우 제 살 터전을 얻는 게 다르덴 형제의 눈에 비친 현실이다.
1999년, 아직은 투박했던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향해가진 못한다. 다만 무너져나가는 열여덟 소녀 로제타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따르며 누구보다 생명력 있던 그녀가 마침내 스스로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내는데 집중한다. 그녀는 달걀을 까먹으며 죽고자 한다. 세상 어느 사회라도 달걀을 먹으려는 욕망이 있는 아이가 스스로 죽기로 결정하게 한다면 유죄판결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욕망이 남은 인간이 삶을 저버리려 할 만큼 잔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제9회 부천노동영화제는 20세기 말 벨기에의 현실을 다룬 <로제타>로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올해 초 34세 이하 청년 40%가 연소득 2000만 원 미만이라는 통계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됐다. 서울연구원은 서울 청년 52.9%가 스스로 경제적으로 빈곤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일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빈곤의 수렁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청년들이 20여 년 전 벨기에에만 있는 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