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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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서스펜스에는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 변화가 자아내는 스산함과는 결이 다른 긴장감도 깃들어 있다. 그 중심에는 병원이 있다. 작중 에이미와 찰스의 직장인 병원은 새삼 서늘하다. 시종일관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들로 가득하다. 코드블루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병원 측 관계자들의 대처도 미심쩍다. 의문사가 발생한 지 7주가 지나도록 내사를 진행할 뿐 경찰에게는 신고하지 않는다. 뒤늦게 신고받고 온 형사에게는 극도로 비협조적이다. 직원 면담은 관리자 동석 하에만 허용하고, 수많은 내사 자료 중 A4 몇 장만 넘겨줄 뿐이다. 경찰이 찰스를 의심하자 계약서에 날짜를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다른 병원들도 다르지 않다. 형사들이 찰스의 근속기간과 평판, 근무 태도 등을 묻자 한 병원 관계자는 전화기를 변호사에게 넘긴다.
한 섬뜩한 장면은 이 모든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복도 유리창에 비치는 찰스의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복도와 유리창 위에 둘로 나뉘어 있다가 중환자실 문 앞에 도착하자 하나 된다. 마치 겉으로는 좋은 간호사일지 몰라도 그 속은 살인범이라고 고발하듯이. 하지만 이미 찰스는 아무런 제지 없이 병원 내부를 조용히, 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진찰하고 그들에게 투약할 수 있다. 그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까지, 수액들이 보관된 창고에 들어가기까지, 불법적으로 인슐린을 인출하고 그 증거를 인멸하기까지 그를 제지하는 사람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도를 홀로 걷는 찰스의 모습은 유달리 소름이 끼친다.
영화는 병원들의 태도가 찰스의 살인 범죄를 가능케 한 또 다른 이유라고 지적한다. 의문사 사건에 냉담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없으며, 찰스라는 폭탄을 떠넘기기에 바쁜 병원도 최소 방관자, 최대 공범이라는 것이다.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듯이, 무책임한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간호사 개인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은 온전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 연쇄살인범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모범적인 스릴러 영화일지는 몰라도, 자칫 특별하지 않은 작품일 수 있었다. 물론 뚝심 있게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기법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사실 속도감도 강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찰스가 범인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의 관점에서는 올곧은 스릴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선정적인 연쇄 살인 사건에서 살짝 거리를 둔 채 사건을 더 넓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려는 시도만 아니었더라면. 바로 그 시도 덕분에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실제 사건이 주는 무게감과 부담감에 눌리지 않는, 품격 있는 스릴러 영화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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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