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수업 시대> 포스터
넷플릭스
나이 먹은 스승은 수천 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인도의 전통음악이자 고전음악인 '라가'를 지키고 이어나가고자 훈련에 매진하며 어디든 달려가 노래를 부르고 또 젊은 제자들을 가르친다. 스물네 살 먹은 샤라드도 그 제자 중 하나로, 그는 가족과 연애는 물론 경제 활동까지 뒤로 한 채 라가 연구와 훈련에 매진한다.
엄격하고 실력이 출중한 스승에게 철저한 가르침을 받으며 나날이 향상된 모습을 보이지만, 샤라드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고 또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제자들은 다 잘하고 자신만 뒤처지는 것 같은 한편, 라가를 계속 하며 살아가는 게 맞나 싶은 근원적 고민에 휩싸인다. 아무도 전통음악을 알려 하지 않고 무명가수를 거들떠 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점차 삶은 고독해지고 가난에서 벗어날 길도 보이지 않으며 언제쯤 재능을 꽃피울지 알 도리가 없다. 밖에선 전통음악 아닌 음악들이 대세를 이루고, 안에선 샤라드에게 유일한 힘이자 길이 되어 주는 스승이 쇠약해져만 간다. 샤라드는 이 지독한 현실을 타파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타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전통음악가의 고민 어린 여정
예술을 한다는 것, 비주류이자 지금 당장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고 관심받지 못할 전통의 예술을 한다는 것보다 더 고독한 일은 없을 테다. 가난과 무관심 등의 예술 바깥의 영역이자 현실적인 사항 등은 물론이거니와 영원에 가까운 훈련과 탐구와 정진의 과정이라는 예술 안 영역에서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시시때때로 당도해 괴롭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수업시대>는 인도 전통음악 라가를 두고 한 음악가가 고민하는 여정을 그렸다. 지구상 그 어떤 나라와 지역보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도'이지만 현재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전통음악 라가뿐 아니라 '인도'라는 나라의 고민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차이타니아 탐하네 감독의 전작 <법정>에 이어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에 출품되었는데,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법정>이 베니스에서 오리종티 작품상와 미래의 사자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던 만큼, 그의 작품들이 앞으로도 베니스 영화제를 화려하게 수놓는 데 크게 일조를 할 게 분명하다.
가르침 받는 이의 고행
영화 <수업시대>의 원제는 'The Disciple'로, 거두절미하고 '제자'라는 뜻을 가진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이 영화에선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배우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훈련하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여, 제자가 주체로 비쳐지지 않는 듯한 번역 제목 '수업시대'는 영화의 내용을 정반대로 해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쉽다.
그렇다. 이 영화는 제자의 고행이다. 가르침을 받는 이의 고행이다. 끊임없이 평가를 받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이의 고행이다. 왜 그런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가 선택한 길이오 내 사명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그런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다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민하고 훈련하고 평가받고 고치고 수행하는 행위를 무한으로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전통과 행복, 무엇이 우선일까
<그래비티> <로마>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알폰소 쿠아론이 총괄 프로듀서이자 멘토로 참여해 차이타니아 탐하네 감독에게 많은 조언을 전했다고 알려지는데, 잔잔하지만 탄탄하고 일면 날 서게 삶의 단면을 보여 주는 면모가 닮아 있는 것 같다. 극중 인물을 통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는 한편, 영화 자체로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려는 것 말이다.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 책임져 주지 못한다. 하여, 내가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지지부진하고 두렵고 슬프기까지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끝까지 밀어붙일까,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할까, 타협할까, 포기할까. 감히 절대 내 한 몸 희생하라고 하지 못하겠다, 가급적 내 한 몸 지켜 가면서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수 천 년의 전통을 지키려는 샤라드에겐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관점을 달리하고 한 발짝 떨어져 거시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제아무리 수 천 년 동안 지속되어도, 핵심과 정수는 유지하되 다른 것들은 수없이 바뀌었을 게 분명하다. 핵심과 정수를 지키는 방법 말이다. 샤라드도 제 한 몸 지키고 또 최대한의 행복을 가져 가면서 전통의 핵심과 정수를 이어가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전통 그 자체가 아닌 사람이 아닐까? 전통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갈 사람이 없다면, 전통이 무슨 소용이고 무슨 의미를 가질까? 사람이라는 주체가 우선 바로 서야 사람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 전통이 바로 설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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