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 포스터.?
넷플릭스
얼마 전 4시간 분량의 슈퍼히어로 대서사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로 존재감이 희미해지던 DC 확장 유니버스에 기적과도 같은 활력을 불어넣으며 전 세계 슈퍼히어로 팬뿐만 아니라 영화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를 불러일으켰던 장본인, 잭 스나이더. 이 작품 전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표하는 영화는 초창기 작품들이었다. 장편 연출 데뷔작 <새벽의 저주>와 두 번째 연출작 <300>.
특히 <새벽의 저주>는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와 더불어 21세기 초 제2의 좀비물 붐을 주도한 작품으로 영원히 남을 만한데, 공통적으로 좀비가 스피디하게 뛰어다니며 자연스레 긴장감 어린 공포가 빠르게 퍼지며 액션이 가미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인간군상의 단면까지 치밀하게 담아내니, 정녕 획기적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장르였던 것이다. 잭 스나이더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12년에 속편을 제작하고자 했으나 <왓치맨> <맨 오브 스틸> 등 대형 프로젝트 때문에 미뤄지고 말았다.
10여 년이 흐른 후 <새벽의 저주> 속편으로서가 아닌 독립된 영화로 <아미 오브 더 데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찾아왔다. 잭 스나이더로선 오랜 숙원을 이룩해 낸 것일 텐데, 그 마음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제작, 원안, 연출, 각본, 촬영감독까지 그야말로 영혼을 담아 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잭 스나이더의 작품 특성상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거니와 그의 필모를 들여다보면 '퐁당퐁당' 격으로 작품성이 들쑥날쑥한 경향을 보이는데, 과연 이 작품은 어떨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들여다보자.
좀비 세상, 돈 탈취 작전
좀비들의 습격으로 라스베이거스가 쑥대밭이 된다. 구출 작전과 봉쇄 작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대부분이 죽거나 좀비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이가 구출된다. 그리고 완전히 봉쇄되는 라스베이거스, 몇 달이 흐른 후 대통령이 라스베이거스에 핵폭탄을 떨어뜨리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난민수용소 역시 빠른 시간 내에 철수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나흘, 그때 스콧 워드에게 제안이 하나 들어온다. 라스베이거스의 어느 호텔 주인 다나카가 지하 금고에 있는 2억 달러를 탈취해 돌아오면 5000만 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라스베이거스 민간인 구출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지금은 햄버거 패티를 만들고 있는 스콧은, 난민수용소에서 자원봉사하는 딸 케이트에게 난민구출에 쓸 돈을 건네고 싶어 제안을 승낙한다. 스콧으로선 케이트와 사이가 멀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스콧은 곧바로 팀을 꾸린다. 함께 민간인 구출 작전을 했던 믿을 만한 지인들, 헬리콥터 조종사와 금고털이, 안내자, 좀비 사냥 유튜버, 다나카 경호부장, 난민수용소 치안담당자, 그리고 케이트까지. 안내자의 안내로 큰 탈 없이 라스베이거스 핵심부로 향하는 이들, 하지만 그곳은 긴밀히 소통하며 집단 생활을 하는 '좀비 왕국'이었다. 과연 무사히 돈을 탈취해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법
역시 잭 스나이더의 영화인 만큼, <아미 오브 더 데드>는 보는 이들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새벽의 저주> 류의 좀비물을 기대했다면 철저히 배신당한 느낌까지 날 게 분명하다. 이 영화는 좀비물과 하이스트(케이퍼) 무비의 합작으로, 좀비물보다 하이스트 무비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거니와 무엇보다 스토리가 촘촘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 볼 여지는 굉장히 많다. 아기자기까지 하게 보이는 이야기와 상징이 도처에 깔려있다. 들어간 돈도 돈이고 스케일도 스케일인 만큼 명명백백 액션 블록버스터이지만, 이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영화가 던지는 이야깃거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영화의 망조에 가까운 스토리라인에서도 최악의 구멍으로 평가할 수 있는 캐릭터 케이트를 완전히 다른 식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를 다름 아닌 잭 스나이더 감독의 딸을 투영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케이트는 아빠의 팀에 합류하면서 그녀가 돌보던 난민 키타를 찾아야 한다고 천명한다. 키타는 좀비에게 잡혀간 걸로 보이고, 케이트는 홀로 키타를 구하러 갈 지도 모른다. 아빠 스콧은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스콧은 잭 스나이더 감독 본인을 투영했을 텐데, 스콧은 좀비가 된 아내를 직접 죽이고 그걸 본 케이트와 멀어지며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삶의 의미도 의욕도 희망도 없이 햄버거 패티를 굽는 삶에 만족하고 있던 찰나, 거액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그가 승낙한 건 큰 돈을 케이트에게 주어 그녀로 하여금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만들어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시 해내고 싶은 것이다. 비록 작전 자체는, 죽으러 가는 것과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풍성하게 보는 법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는 주지했다시피 겉으로 드러난 서사와 액션만 보면 참 시시하다. 팀을 꾸려 거액의 돈을 탈취해 오는 이야기에 특별할 게 뭐 있겠는가. 다만 팀이 가야 할 곳이 좀비가 점령한 왕국이라는 점이 눈에 띌 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 '좀비 왕국'에도 이야깃거리가 좀 있다. 특별할 것까진 없지만 영화를 보는 데 충분히 풍성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의 좀비물에선 주체가 대체로 인간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좀비를 퇴치하는지 보여 주며 인간군상의 단면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려 했던 것이다. 좀비물의 재미는 사실 인간군상에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간과 좀비가 대등하다. 좀비가 계급 체계를 이뤄 왕국을 세운 것. 새로운 종의 탄생인가, 개척자로서의 활약인가, 기존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인가. 어떤 식으로든 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 보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좀비 왕이 왕국을 꾸리고 있는 곳이 '올림푸스'라는 이름의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이다. 올림푸스가 뭔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12신의 거주지 아닌가. 또, 좀비 왕이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에서 스콧의 팀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슷한 맥락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있다. 좀비 왕은 스스로를 왕이 아닌 신으로 설정한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이 아닌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봐도 틀리지 않겠다.
라스베이거스에 초점을 맞춰 볼 수도 있다. 왜 하필 라스베이거스일까? 좁은 의미에선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향락의 도시이기에 미국을 향한 비판이나 풍자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사막 위에 세워진 기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다르다. 원주민을 몰아 내고 그들만의 왕국을 세운 미국인, 좀비한테 똑같이 당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인을 몰아 내고 그들만의 왕국을 세운 좀비 말이다. 이러면, 개척자로서의 활약으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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