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러브 앤 몬스터스> 포스터.
넷플릭스
세상이 위기에 처했을 땐 어김없이 영웅이 나타났다, 슈퍼맨이 그랬다. 그러다가 부족함이나 결핍이 있는 영웅이 나타났다, 아이언맨이 그랬다. 찌질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영웅도 나타났다, 스파이더맨이 그랬다. 종국엔 여러 영웅들을 한데 모았다, 어벤저스가 그랬다. 이 패턴은 돌고돌 것이다.
여기,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후 느닷없이 나타난 '지질이'가 있다. 그는 당연히 영웅이 아닌데,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다. 평균 이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고 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가 세상의 종말 이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평균 이하의 겁쟁이이자 '지질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러브 앤 몬스터스>는 지질한 겁쟁이 또는 겁 많은 지질이 조엘이 135km 떨어진 곳에 있을 거라 추정되는 헤어진 여자친구 에이미를 찾아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비록 그에겐 세상을 구할 힘이 없고 또한 그는 세상을 구할 타이밍을 놓쳤지만, 그의 이야기를 기꺼이 시간 내서 보게 되는 건 다름 아닌 그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조엘의 매력 말이다.
멸망한 세상에서 여자 친구 찾기
지구에 충돌할 위기의 소행성을 격추하고자 온갖 미사일을 퍼부어 그 때문에 생긴 화학물질과 방사능 등으로 지구가 뒤덮인다. 냉혈동물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화되고 위험해진다. 그 '괴물'들로 인류의 95%가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은 지하벙커나 대피소를 만들어 겨우겨우 살아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엘은 7년 전 피신하는 과정에서 괴물에게 가족을 잃고 또래들과 함께 지하벙커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른 모든 구성원과 다르게 그에게만 짝이 없는데, 그가 찌질하고 겁쟁이에 괴물 그림만 그리고 있을 뿐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이때,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이란 말이다. 그날도 괴물이 쳐들어 왔는데, 그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고 용감한 전사만 죽어 나갔다.
갑자기 각성했는지, 조엘은 7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으러 가겠다고 선언한다. 다들 말리면서도 결국 붙잡지 않은 건,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그가 살아서 그 먼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석궁 하나 어깨에 매고 제대로 표시가 안 된 지도를 든 채 무작정 바깥으로 나선 조엘, 힘겹지만 결국 해낼 거라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과연 어떻게든 갈 길을 갈 수 있을까?
설정, 캐릭터, 시대까지 맞물린 성공
이런 장르의 영화, 즉 10대를 핵심 타깃으로 하는 SF 판타지 기반의 모험 활극 영화가 지루하면 큰 문제겠지만 이 영화는 특이 지루할 틈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간략하지만 확실하고 명확한 세계관, 찌질하고 겁 많은 주인공 캐릭터, 자그마치 '사랑'을 찾아 '괴물'로 판치는 세상을 활보해야 하는 설정, 어김없이 도움 받고 도움 주는 우정 어린 순간들, 여전히 모자르지만 한층 성장한 모습까지. 무엇보다 완벽하다시피 한 CG가 한몫하는데, 특히 괴물과 실사의 조합에 전혀 이질감이 없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되어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최상위권에 위치하며 성공을 맛보았는데, 위의 사항들이 큰 몫을 차지한 가운데 영화의 핵심 타깃 아닌 대기 타깃이라고 봐야 할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어필이 가능했다. 그건 판데믹 시대와 맛물리지 않을 수 없는 바, '집 밖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진 지금 '괴물이 우굴거리는 바깥 세상'으로 떠난 조엘의 이야기에 저절로 마음이 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누구나의 '나'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조엘이 아닌가.
또 하나를 뽑자면, 조엘이 아닌 조엘이 만난 이들이다. 이런 영화의 특성상, 조엘은 결국 살아남아 목적을 완수했을 것인데 과연 그가 혈혈단신으로 그 먼 거리를 갈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럴 때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인연'. 조엘의 여정엔 용맹한 개 '보이',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 '클라우드'와 꼬마아이 '미노'가 크나큰 도움을 준다. 특히, 보이의 활약과 더불어 보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전체를 캐리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시점, 최대한의 즐거움
<러브 앤 몬스터스>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나처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면 크나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테고, 큰 기대를 하고 보면 언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킬링타임 영화에 불과할지 모른다. 디테일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미숙한 부분들이 한도 끝도 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이 부분도, 생각 외로 고퀄리티를 자랑하는 부분으로 상쇄되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게 될 수 있다.
주인공 조엘로 분한 '딜런 오브라이언'을 향한 시선도 갈릴 것 같다. 그는 미드 <틴 울프>와 영화 <메이즈 러너> 단 두 개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인기 스타 반열에 올랐는데, 이후 정극에도 도전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누군가는 '역시 딜런 오브라이언이야, 그는 딱 이런 영화에 나와야지!"라고 생각할 반면, 누군가는 '얘 나오는 거 보니 안 봐도 뻔하네, 겉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할 테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점에서 집에 콕 박혀 최대한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중 이만 한 게 없다. 넷플릭스가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는 말이다. 어둡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이보다 더 활기찰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탁월함,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미소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한 번 보고 다시 얘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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