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컷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틸컷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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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1분가량의 애니메이션이다. 다른 영상물에 비하면 짧기만 한 러닝 타임이지만 하나의 완벽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 주어진 시간을 완벽히 활용해낸다. 영화는 크게 세 지점으로 나뉜다. 슬픔과 도탄에 빠진 가족의 모습이 담긴 초반부와 가족에게 일어난 일 전반의 내용을 표현해내는 중반부,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는 사건 이후 가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회복에 대한 바람이 표현된다. 이렇게 구분된 세 지점의 이야기는 독립된 형태를 취하기는 하나 흐름상 분절되지는 않은 상태로 서로 맞물려 기능한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타이틀에서도 추정해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부모의 소중한 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니까, 열 살이 되던 해에 교내 총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에 이야기인 셈이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이라는 문장은 죽음 직전에 작성된 문자 메시지의 내용 중 일부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극의 중, 후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으로 인해 영화의 전체 내용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내용적으로는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져 온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앨리펀트>(2003)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2003)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지난 1999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발생한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하지만, 영화를 연출한 윌 맥코맥, 마이클 고비에 두 감독에 의하면 이 작품은 공식적으로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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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청각적 효과보다는 시각적 효과가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물론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의 '1950' 곡처럼 상징으로서 활용되는 음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중의 차이다. 시각적 효과, 그 중에서도 색상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감정 및 메시지까지도 전달한다. 수묵화 스타일의 매끄러운 이미지와 흰 배경은 전체적으로 창백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인물이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검정색을 중심으로 한 다른 색상을 통해 제한된 초점으로 시야를 좁히는 역할을 하는데도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
그 위에서 표현되는 포인트 색상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부여 받는다. 각각이 부여 받는 상징성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것이 첫 번째, 변화의 과정에서 각각의 지점에 해당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두 번째다. 가령, 이 영화에서 파란색은 우울과 슬픔의 상징으로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로 활용된다. 또한, 잃어버린 사랑과 슬픔,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집 외벽의 페인트와 티셔츠의 색으로, 중반부 이후에서는 풍선과 생일 케이크 위 초의 색으로 활용된다.
한편, 건물 외벽에 묻은 파란색 페인트가 그림자에 의해 핥아지는 것과 가족 모두의 그림자가 티셔츠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파란색이 노란색의 포인트 색깔로 전환되는 계기가 된다. 파란색과 달리 노란색은 이 영화에서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므로 아이와 함께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중반부의 시작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의 품 속 작은 불빛이 되어 온 마을을 비추는 장면처럼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한 가정이 느낀 모든 긍정적인 감정의 총체가 바로 노란색의 의미인 것이다.
이렇게 설정된 하나의 색상에 대한 의미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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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 내적 장치들이 잘 짜여져 있다고 해도, 스토리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객들의 마음은 결코 움직일 수 없다. 오는 4월 열리는 미 아카데미 시상식의 단편애니메이션 부문에 이 작품이 당당히 후보로 지명된 것만 봐도 그 깊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심함이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의 두 감독은 평범한 흐름 속에서도 섬세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세탁기에서 딸이 입었던 옷을 발견하고 엄마가 우는 장면을 조금 설명해 볼까 한다. 빨래 더미 속에서 딸의 티셔츠를 발견한 엄마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다. 약간의 떨리는 호흡, 눈가에 글썽이는 눈물, 그대로 세탁기에 기대었다 풀썩 주저앉게 되기까지 모든 행동이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된다. 또, 앞서는 들어가지 못했던 딸의 방에 우연히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들어가기까지의 시간, 이후에 등장하는 함께한 여행길에서 다소 심드렁한 표정까지. 이 모든 장면이 하나의 장면으로 결합되며 그 총체적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 위에서 다독이는 딸의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은 또 어떻고.
사고가 일어나던 날을 묘사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학교로 향하는 딸의 발걸음을 어떻게든 멈추려고 하는 부모의 그림자를 묘사한 장면이나, 사고의 구체적인 묘사 대신 성조기를 대신한 장면은 제작진의 사려 깊은 마음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붉은색이 미국을 상징하면서도 피를 상징하는 색임을 고려할 때, 여기에서도 앞서 언급했던 포인트 색상과 그 의미가 잘 활용된 부분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