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토>의 한 장면. 말 없고 무표정해 오만하게까지 보이던 마이크(로만 빌릭 분)의 선글라스 뒤에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있었던 게 아닐까.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마이크가 빅토르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서구세계를 동경해왔다는 사실을 세련되게 표현한다. 일례로 마이크는 소련에선 쉽게 구할 수 없는 커피를 좋아하고, 미국과 영국의 음악을 녹음해 집에서 들으며, 그 경향을 자신의 곡에 반영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마이크가 자유주의 세계와 체제 경쟁을 하던 당대 소련의 유명가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이색적이다.
더욱 놀라운 건 마이크에게 서구의 음악이 경쟁이 아닌 동경의 대상에 가깝단 점이다. 극중 마이크는 음반을 녹음해 서구 세계로 내보내자는 동료의 제안에 비틀즈·밥 딜런·롤링스톤즈·퀸·벨벳언더그라운드 등 수많은 음악가들을 열거해가며, 이미 서구세계엔 제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토해내듯 고백한다. '왕처럼 행세할 수 있다면 작은 늪의 두꺼비도 나쁘지 않다'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루 리드와 벨벳언더그라운드를 쫓던 저 자신의 한계를 마이크는 빅토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이크 앞에 빅토르가 나타난다. 서구의 유명 가수를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저만의 스타일로 자신 있게 제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서 마이크는 무엇을 보았을까. 마이크가 빅토르에게 당대 소련에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자극을 전하려 한 건, 또 그와 아내 사이의 일을 애써 눈감으려 했던 것 모두 빅토르가 마이크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레토>의 진정한 매력은 마이크를 그저 서구세계를 동경하는 두꺼비 정도로 남겨두지 않았단 점에 있다. 영화는 마이크가 빅토르나 서구의 가수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좌절하는 대신 계속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며 제 음악을 해나가길 선택했다는 걸 보여준다. 마이크는 가장 화가 나는 순간에서조차 나타샤와 빅토르를 탓하지 않고 지난 계절 뒤에 새 계절이 덮이듯 달갑지 만은 않은 변화를 묵묵히 감내한다. 저를 추월하는 자와 제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선 자를 저주하지 않고서,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감당하는 것이다.
봄이 지나면 레토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