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고향에 펼쳐져 있던 늪지대 풍경을, 가슴 아래 가라앉은 어둠을, 거듭해서 그렸던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 분)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대니쉬 걸>은 에이나르 베게너로 태어나 릴리 엘베가 되기를 꿈꾼 한 인간의 이야기다. 동시에 아내로서 그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깊은 고통을 받은 게르다 베게너의 이야기다.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꿈에 다가서려는 불굴의 욕망을 그렸으며 참담한 아픔 속에서도 애인을 지키려는 한 여자의 용기를 그렸다.
촉망받는 덴마크의 풍경화가 에이나르와 무명의 인물화가 게르다는 금슬 좋은 부부다. 게르다가 에이나르 만큼 주목받는 화가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들 사이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모든 건 게르다가 에이나르의 내면에 잠든 '릴리'를 깨우며 시작됐다. 모델의 잦은 지각에 조급해진 그녀가 남편을 모델 삼아 발레슈즈와 스타킹을 착용하게 하고 급기야는 발레복을 몸에 대도록 했는데 그것이 에이나르의 내면에 잠재된 본성을 자극하고만 것이다. 소년 시절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으나 이후 십 수 년 동안 그에 대한 기억을 잊고 살아온 에이나르에게 이후의 삶은 더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영화는 릴리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에이나르와 그런 그녀의 앞에 펼쳐진 낯설고 폭력적인 세상, 남편과 자신을 지키려는 게르다의 분투를 한꺼번에 비춘다. '왜 여성인 나는 남성으로 태어났는가', '어째서 나의 정신은 잘못된 육체에 매여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거듭 릴리를 괴롭힌다. 그녀는 남성의 상징을 제거하고 여성의 성기를 제 몸에 갖기를 원하며 마침내는 임신까지 할 수 있는 온전한 여성이 되기를 꿈꾼다. 온전한 여성의 육체를 갖고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쉽지 않은 걸음을 떼는 그녀의 모습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향해 전진하는 불굴의 의지가 읽힌다.
투박한 연출, 비범한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