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량첸살인기각본은 잘 써놓고 연출에선 곳곳에서 역량부족을 드러낸 노덕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흠을 잡으려 든다면야 무사하지 못할 영화긴 하다. 한 장면 걸러 하나씩 부족한 점이 눈에 띄고, 단순한 구성에도 가지치기를 못해 우왕좌왕하는 부분도 한둘이 아니다. 영화에서 더없이 중요한 오프닝이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부터, 클라이막스 이후 결말에 이르는 과정도 억지스러워, 따지기 좋아하는 관객을 만난다면 적어도 수십분은 악평을 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오프닝은 변호가 안 될 만큼 실망스런 수준이다.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오프닝을 감독은 범인의 살인신으로 마련해두고 있는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성과는 없으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길고 난삽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특히나 범행이 이뤄지기 전까지 야밤의 공원에서 벌어지는 키스신은 도대체 어떤 의도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장면으로 아까운 오프닝을 낭비했다는 것부터가 감독이 영화를 효율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소개팅에서 사람을 만나도 초반 3초의 인상을 극복하기 어렵다는데 하물며 영화야 어떻겠는가.
엔딩 역시 마찬가지다. 러닝타임 내내 진실과 거짓, 또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들 사이에서 헤매던 주인공은 영화의 끝에 이르러 실체적 진실을 입증하는 대신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을 믿기를 선택한다. 영화는 이를 위해 러닝타임 내내 주플롯과 보조플롯을 함께 전개해 왔는데, 여기서 주플롯은 살인사건에 휘말린 기자로서의 이야기이고 보조플롯은 아내와의 가정사라 할 수 있다.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러 허무혁의 손에 친자검사 결과통지서를 쥐어준다. 그런데 이를 받아든 허무혁은 딸의 친부가 자신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결과서를 태워버린다.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의 진상 역시 덮어버린다.
감독은 허무혁이 두 상황 모두에서 진실을 증명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진실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블랙코미디적으로 표현하기를 의도했던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위적 표현을 위해 길고 지루한 보조플롯을 이어왔다는 건 낭비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극의 클라이막스에서 허무혁을 살인범과 조우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친자확인서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진실을 감추는 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내의 이야기를 교차시킨 선택이 투박하고 조악하게까지 느껴졌다.
짜임새가 부족한 결말부와 엉성한 디테일 탓에 허무혁이 경찰에 출두하는 대신 아내와 병원에 머물고 사건을 묻어버리는 선택이 억지스럽게 여겨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블랙코미디적 결말로 이어가는 연결고리도 허약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사회부조리를 환기시키는 상징적 블랙코미디라기보다 급작스런 방향전환에 가깝고, 이를 보는 관객 역시 이야기가 끝맺어지지 않은 듯한 찝찝함을 맛보게 된 것이다. 오락영화로서 소재와 설정이 흥미로운 건 사실이지만, 부족한 역량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꺼내다 보니 스스로 걸음이 꼬인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영화는 결말 이후 극영화에선 다소 낯선 톤으로 채널A와 조선일보 사옥을 노골적으로 비추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이 감독의 의도를 더욱 투박하게 노출시킨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살려낸 배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