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시청자 특집에서 강신주 박사가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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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독한 상담 과정을 보고 있으니, 무당집이 떠오른다. 앞의 상을 '땅' 치고 "틀렸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인연이 아니야!"라고 말하던. 우리가 이젠 무당의 그 말이 낭설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지, 과학과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의 시대에 신의 대리인으로서 전지전능의 권위를 자랑하던 자들이 바로 그들 샤먼들이었다. 우리가 즐겨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도 전쟁에 나가기 전에 신전에 찾아가 신의 말씀 신탁을 듣지 않았던가 말이다.
하지만 내 운명을 확고하게 인도할 것 같던 그 신의 존재는 산업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 존재가 희미해져 갔다. 더불어 신의 말씀을 전하던 샤먼들은 음침한 골목에서 외로운 깃발 하나에 의지한 채, '영험'하다는 말로 포장한 채, 삿된 요술의 존재가 되어가고. 사람들은 개별자로서의 외로움에 떨고.
그래서 대신 등장한 것이 정신과 상담이요, 그것보다 유연한 것이 '힐링'이요, 이제 '힐링'이 또 다르게 업그레이드된 것이 '다상담'과 같은 것들이 아닌가 싶다. 상담해 주는 사람들이 방책으로 삼는 처방들은 제 각각이지만, 결국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해주던 신탁과 본질적으로 효과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신탁은 때로는 영웅들에게 전쟁에 나가 이기리라는 승전보를 알려주기도 했지만,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비보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영웅들이 비보를 들었다고 그의 걸음을 물렸던가.
결국 <힐링캠프> 출연자들이 전해주었던 힐링의 달콤한 말이 옳으냐, 강신주식의 직설이 옳으냐가 문제가 아니다. '직설'이라면 지난 번 출연했던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강신주든, 법륜 스님이든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 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 치나 메치나 '위로'다.
그저 위로의 방식이 어깨를 도닥여 주느냐, 선방의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치느냐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더불어 조금 더 행복하게 사랑하고 살라는 소박한 주문이다. 단지 그것들이 TV라는 공적인 매체를 통해, 조금 더 공신력 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 있다. 그런 누군가의 방식이 그 옛날 샤먼의 그것처럼 전지전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덧 이 시대의 TV가 바보상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신전이 되어 신탁인 양 그런 정언들을 옮겨대는 것이다. 그 또한 그저 강신주의, 법륜의 생각이요 주장에 불과한 것을 우리는 마치 교실 속 착한 학생들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된다.
결혼 첫날밤 고백을 하든 그렇지 않든 그 사람의 진실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을,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간사한 귀찮음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람 마음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끄집어내는 충격 요법은 그저 여러 치료법 중 하나라는 것을 TV를 보는 우리가 매번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 아무리 꿈을 꾸고 사랑을 해도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덮어두게 되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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