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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 넘긴 <감시자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

[리뷰] 영화 <감시자들>

13.08.05 11:51최종업데이트13.08.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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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이를 '기록'한다. 수만 년 전 원시인류가 굳이 저 깊고 어두컴컴한 동굴 속 벽면을 따라 들소와 사슴 따위를 새긴 것도 삶의 흔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게조차 두려운 일이었다. '기록'의 역사는 이처럼 길다.

수만 년의 시간이 흘러 문자가 만들어지고, 기록에도 계급이 생겼다. 높은 곳에서 곁눈으로 내려다 본 세상이 밑바닥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라본 세상과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록의 계급은 현실의 그것과는 달랐다.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도 기록보다 오래가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껏해야 수십 년을 살았을 높으신 분들에게 긴 세월을 거슬러 저 밑바닥으로부터 전해진 기록들은 간담이 서늘할 만큼의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늘 기록을 만지작거렸던 이유다.

다시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의 흔적을 0과 1이라는 숫자로 바꿔 보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빅 데이터'의 등장이다. 그러나 눈부신 기술의 성취로도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 많은 흔적들을 모조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끝없이 쌓이는 그 기록들은 대체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누군가 그 기록에 손대지 못하도록 막을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들이다. 오늘날 기록을 둘러싸고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소란들은 아직 우리가 그에 대한 아무런 답도 마련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록에 대한 영화 <감시자들>

 영화 <감시자들> 포스터
영화 <감시자들> 포스터영화사집

공교롭게도 소란이 한창이던 때에 기록에 대한 영화 한 편이 선을 보였고, 한 달 새 관객수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영화 <감시자들>이다.

영화는 경찰 내 '특수범죄과 감시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름이 말해주듯 감시하고 기록하는 일이 이들의 임무다. 거리 곳곳의 CCTV와 그것들이 보내오는 영상, 카드 결제 기록 따위가 그들의 장비이자 무기다. 여기에 감시반의 두 발과 두 눈 그리고 기억이 더해진다.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든 첨단 장비들이 감시망의 씨줄이라면 잘 짜인 호흡으로 범인을 몰아가는 감시반의 움직임은 그 날줄이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이 촘촘한 감시의 그물을 피해가거나 벗어날 수 없다. 빈틈없어 보이던 범인들조차 결국은 이들의 그물에 걸리고 마는 것처럼. 수백 수천 대의 CCTV로 마치 하늘을 나는 매처럼 도심을 내려다보거나, 어딘가에 흩어져있던 감시반원들이 군무를 추듯 바통을 주고받으며 누군가를 뒤쫓는 모습은 때로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멋지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행위들이 정말 멋지기만 한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런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영화 속 감시반에겐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 임무는 오로지 감시에 그쳐야 하며, 허가된 임무 외에 어떠한 일에도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따위가 그것이다. 감시반에게 굳이 이런 족쇄를 채운 데는 아마도 혹시 모를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가려는 감독의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황 반장(설경구)이 하윤주(한효주)의 돌출행동을 꾸짖으면서 '불법사찰'이란 단어를 쓴 것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감시는 그 자체로도 얼마든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황 반장의 지적도, 이들의 규율도 모두 틀렸다. 이들의 임무는 오로지 감시에 그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아주 제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도 '감시반'이 있다면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서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권우성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은 모두 정의감이 넘치며 유능하기까지 하다. 보름 넘게 밤낮 없이 잠복을 이어가다 끝내 범인의 흔적을 찾아내는 감시반도 그렇지만, 일사분란하게 도로를 통제해 도망치던 범인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교통경찰도, 또 무장한 범인들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검거팀도 그렇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이런 경찰의 모습은 아마도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쾌감을 던져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속 멋진 경찰의 모습은 감시반의 존재만큼이나 우리의 현실과는 멀게 느껴졌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 후보에게 불리할지 모를 의혹이 불거지자 오히려 야당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뒤바꿔 서둘러 발표해 버린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던가. 이는 최근 공개된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실의 CCTV 동영상 녹취록을 분석한 기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국, 127시간 동안 분석한 내용은 사라진 채 16일 저녁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오후 11시, 경찰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마이뉴스>, 2013.8.1

온 국민의 눈이 쏠린 기록에도 이처럼 함부로 손을 대는 대한민국 경찰 안에 영화 속 '감시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 않은가. 경찰청이 제작 과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 영화가 관객수 500만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기록을 남기고 지키는 일의 엄중함

기록을 둘러싼 소란이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게 지난 대선을 앞둔 때였으니 열 달 가까이 끌어온 셈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가 들춰봐선 안 될 기록을 들춰본 데서 이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대선 국면에서 엉뚱하게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이 스스로 국가기밀을 팔아 목숨을 부지하는 망신스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오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끝 모를 소란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기록을 남기고, 그 남겨진 기록을 지키는 일의 엄중함이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당장 개혁정부를 세우는 일이나, 땅에 떨어진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 옛날 절대권력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기록의 힘이 어디로부터 비롯됐는가를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늦었지만 부디 오늘 우리 사회가 치르고 있는 이 값비싼 비용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록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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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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