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망> 스틸 이미지
㈜영화사 진진
김태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망>은 본인의 단편 <달팽이>와 <서울극장>을 각각 1부와 2부, 그리고 이 작품을 위해 작업한 3부에 해당하는 부분을 결합한 옴니버스 형식의 작업이다. 첫 단편인 <달팽이>가 2020년에 공개됐으니 4년이 걸린 제법 장구한 품이 들어간 결실인 셈이다.
독립된 단편들의 조합이지만 온전히 개별적인 작업을 이어붙인 것과 달리 연작의 통합력 아래 의도된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세계관과 캐릭터의 동질감은 물론 하나의 연대기로 처음부터 계획된 작업이라 옴니버스 장편이 필연적으로 갖는 단품 사이의 이질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치 과거 아트록 명반들이 지향하던 (개별 곡이 아니라 전체를 소화할 때 온전해지는) 콘셉트 앨범과 통하는 면모다.
'누가 제목을 함부로 짓는가!' 감독의 단호한 일갈이 환청처럼 들린다. 제목은 영화 속에서 3부 구성에 맞춰 독자적 의미가 부여된다. 친절하게 단막극 나누듯 각 부의 소제목이 관객에게 지침서처럼 안내된다. 최초로 작업한 <달팽이>가 활용된 1부의 '미망'은 다음과 같다.
迷妄 (미혹할 미, 망령될 망)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여자는 남자와 광화문 거리에서 정말 우연히 만난다. 대개 과거 사연을 품고 재회한 설정이 뒤따르니 미련 혹은 회한과 함께 혹시 모를 가능성을 탐구하는 여정이 늘어지게 나올 법하지만, 손가락 틈새로 새어버린 모래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시간은 정방향으로 흘러갈 뿐 역행은 불가능하다. 아직 인류는 타임머신을 발명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 말이다. 뜻밖의 재회에서 관객이 기대할 판타지는 결코 제공되지 않는다.
<서울극장>이 담당하는 2부의 '미망'은 1부에서 한발 더 전진한다.
彌望 (두루 미, 바랄 망)
멀리 넓게 바라보다
여자는 마치 1부에서 남자와 금방 헤어진 것처럼 그가 광화문을 찾게 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그 일상성은 곧 붕괴할 운명이다. 유서 깊은 극장은 마치 <시네마천국>이 아련하게 보여준 것처럼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현실의 종로3가 서울극장이 처한 운명을 스크린 속에서 고스란히 추모하는 행위다. 여자가 해설하던 한국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의 <미망인>이란 점 또한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필름이 소실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행히 시나리오로 유추할 따름이다. 그런 모호한 가능성은 2부에서 여자가 만나는 새로운,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남자가 입버릇처럼 툭툭 던지는 '그럴 수 있지'와 결합해 영화 속 영화의 열린 결말과 화면 속 현실의 상황을 고리처럼 일순간 연결하고 만다.
1부는 20분, 2부는 30분 분량이다. 여기에 새로 추가된 3부는 40분, 마치 점점 영화 속 소우주가 확장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나선으로 순환하듯 천천히 넓어지는 우주의 본질처럼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후반부의 '미망'은 아래의 의미다.
未忘 (아닐 미, 잊을 망)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언제까지고 도전과 실험을 자신들의 의지만 있다면 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주변 환경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물리법칙 안에서 지속될 수 없다. 인물들은 그 준엄한 법칙을 깨닫게 된다. 뜻하지 않은 이별의 순간을 공동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때 죽고 못 살던 인연이지만 문득 돌아보니 소식이 끊기고 연락조차 할 길 없는 관계가 적지 않다. 그런 지나친 관계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는 경조사인 경우가 태반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바깥세상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또 하나의 주인공, 대도시의 원류이자 역사를 품은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