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크리스마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엣나인필름
전쟁영화로 소개되지만, 해당 장르에 기대하는 요소는 작품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수용소라면 응당 떠올릴 본격 탈출 시도나 전투 장면 같은 건 감독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불순물에 불과하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나는 불가사의한 경이, 그리고 전쟁과 군사주의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초라한 것인지를 영화예술로 입증하고자 분투할 따름이다.
남방 밀림에서 소모전에 휘말린 답답한 상황, 속 시원한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체념은 일어나지 않고 각자 불안과 초조함만 가득하다. 주요 인물 머릿속도 제각각이다. 전쟁터에선 가장 아름다운 미덕과 추악한 욕망이 동시에 일어난다는데 이 영화도 의외는 아니다. 어떻게든 통제권을 유지하고 외교협약에서 금지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부족한 정보와 자원을 끌어내려는 수용소의 강압과 맞서는 포로 사회 내 개별 사정이 미묘하게 엉킨다.
요노이 대위는 죽을 곳만 찾아다니는 존재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동료들이 아닌 로렌스 중령에게 토로한다. 마치 대나무숲을 찾듯 말이다. 일본의 군사 파시즘 체제를 결정적으로 확정한 1936년 2.26 사건의 심정적 동조자, '황도파' 일원이었지만, 하필 만주로 전출되는 바람에 자신의 동지들이 실패한 쿠데타로 처형된 데 반해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이 그를 지배한다. 그래서 더 군인정신과 무사도에 매달린다. 아름답게 꽃같이 죽지 못했다는 한이 그를 유령처럼 공허하게 몰아간다. 잭을 만나기 전까지는 딱 그랬다.
잭 소령은 용맹한 군인이자 성공한 변호사, 게다가 훤칠한 미남이지만 허깨비처럼 살아간다. 중반에 독방 벽을 통해 옆 감방의 로렌스에게 들려준 바대로, 누구건 호감을 보이는 본인과 달리 장애를 안고 태어난 동생과 비교는 어릴 적부터 말하지 못할 고민을 안겼다. 유복한 환경 탓에 함께 사립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릴 적과 달리 잭은 차별을 당하는 동생을 지키려 나서길 주저했고, 동생은 형의 비겁함을 알고도 항변하지 않는다. 그 기억은 늘 죄의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과 사 갈림길인 전쟁에 지원했고, 언젠가 돌아가 동생에게 사과할 기회를 고대한다.
로렌스는 하라 군조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만, 억압하는 자와 당하는 자 구도라 애로가 피어난다. 양쪽에서 갈굼을 당하며 자기 잘못도 아닌데 나서다 폭언과 구타에 당하기 일쑤다. 이제 좀 그만 때렸으면 좋겠다며 점점 피폐한 몰골로 변해가지만, 유머와 균형감각은 놓지 않으려 애쓴다. 마치 자신과 여기 원치 않게 모인 모든 이들이 '인간'임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하라 역시 포로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실상 수용소의 '행정보급관' 노릇을 도맡기 때문이다. 그의 평소 행태는 호통과 윽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일본군 그 자체이다가도 곧잘 자기 재량 내에서,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호의를 베푸는 뜻밖의 면모를 보인다. 이 영화 제목과 연결해 본다면 하라의 행보는 요노이와 잭이 벌이는 극적 긴장을 아래에서 떠받치는 토대와 같다. 로렌스는 이 극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곧 잊힐 사건을 기록하고 전하는 관찰자 역할로 하라와 또 다른 콤비를 이룬다.
거장은 탐미적 풍경으로 무엇을 전하려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