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를 듣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상이 없는 것 같다. 오랫동안 노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아주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아닌데, 내 마음에 어느새 들어와 있는 음악인, 내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음악인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별밤지기'이자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 아이콘, 이문세의 진솔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1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이문세가 출연해 자신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시골에서의 삶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종로구 견지동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가수로서 명함을 걸고 40년 이상 마이크를 잡아 온,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문세는 요즘 시골로 내려가 아날로그 방식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문세는 "동네 족구팀 지인들이 처음에는 저를 경이롭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예전에 유명하셨던 분이죠? 요즘은 활동 안 하고 농사만 지으시네'라고 하더라"는 웃픈 일화를 전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 출연이 매우 드문 뮤지션이었던 이문세는 "이 방송에 나온 것을 보고 지인들이 '문세형 아직 살아계시구나' 안심할 것"이라며 농담 섞인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문세는 최근 대중문화계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에서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특히 흔한 수상소감 대신 자신의 명곡 '소녀'를 뜨겁게 열창했던 명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라는 하이라이트 구절은 마치 대중들에게 전하는 이문세의 진심 어린 약속이자 위로처럼 들렸다는 감동의 반응이 쏟아졌다.

이문세는 절친한 동생인 MC 유재석을 자신의 콘서트 게스트로 초청했던 일화를 회상했다. 2010년 <이문세 더 베스트 콘서트>에서 "내가 노래를 부를 때는 별 반응이 없던 관객들이, 유재석이 등장하며 노래 한 구절을 부르자마자 '와아아아' 하고 함성이 쏟아지더라. 내가 쟤를 왜 불렀지? 후회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문세 하면 역시 뮤지션만큼이나 '별밤지기'라는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이문세는 최근 13년 만에 라디오 DJ로 전격 복귀하며 청취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복귀하고 첫 방송에서 심장이 방망이질을 치는 것 같았다"며 긴장했던 순간을 돌아온 이문세는 "저의 마음 자세가 그만큼 더 진지해졌달까. 방송을 알면 알수록 두려움이 커지고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별밤지기 이문세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별이 빛나는 밤에'는 국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역대 진행자들은 별밤지기로 불리우며 젊은 청취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원조 별밤지기 이문세가 진행하던 시기(1985-1996)는 별밤의 최전성기로 꼽히며, 이문세는 '밤의 문화교육부 장관'로 불릴 만큼 당시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0-90년대 미디어 매체가 아직 다양하지 않았던 그 시절, '별밤세대'로 꼽히던 젊은이들은 밤 10시가 되면 이문세의 라디오를 들으면서 때로는 또래 청춘들의 고민에 함께 공감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이문세는 "별밤을 하면서 많은 분들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별밤지기로 불러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 많은 청취자와 같은 세대를 파도타기 하듯 흘러가고 있지 않나. 방송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인격이 형성되고 다듬어진 게 라디오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며 라디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별밤은 방송 내외적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번은 별밤 방송에서 성적이 오른 학생들에게 공개방송 티켓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자 정말로 많은 학생들이 동기부여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성적표로 접수한 관객들만으로 공개방송 한 회차 객석을 꽉 채운 경우도 있었다.

감동적이고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방송국으로 매일 백통의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한 여고생 청취자가 있었다. 그런데 절반쯤 지나서 편지가 갑자기 중단됐다. 몇달 쯤 시간이 지나 다시 51번째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했는데 이전과는 글씨체가 달라졌다. 사연을 확인해 보니, 처음 편지를 보내던 소녀가 안타깝게 불치의 병으로 사망했고, 소녀의 친구가 그 유지를 이어받아 대신 편지를 보내며 약속된 백 통을 모두 채웠던 것이다.

11년 7개월 별밤을 진행하던 이문세가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떠나던 날에는, 이문세도 청취자들도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문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있는 한 지점으로 돌아간다면, 저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뮤지션 이문세

 방송 장면 갈무리
방송 장면 갈무리tvN

이문세는 가수로서는 40년여 넘게 공백기 없이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소녀' '가을이 오면' '옛사랑' '광화문 연가' '난 아직 모르잖아요' '가로수 그늘아래서면' 등 주옥같은 명곡들은 시간과 유행을 거슬러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대중음악 팬들에게 '이문세의 발라드는 역시 가을이 제철'이라는 공식은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

17집 앨범 '이별에도 사랑이' 역시 가을에 발매하며 여전히 왕성한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이문세는 "히트곡 한 곡을 더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음악의 리듬과 흐름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음악 하는 사람의 본능이자 의무"라는 소신을 드러냈다.

이문세의 전성기와 음악적 감수성을 공유한 '영혼의 파트너'로 고 이영훈 작곡가를 빼놓을 수 없다. 이문세는 "이영훈 작곡가가 제 명곡들을 다 만들어주고 떠났다. 16년이 지나고 저 혼자 해야 했는데 역부족이었다. 부족한 나를 채워준 행운 같은 사람"이라며 그리움과 경의를 표했다.

또한 이문세의 명곡들은 세월이 흘러 임영웅, 아이유 등 많은 후배 가수들의 리메이크로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임영웅이 리메크하여 더 유명해진 '사랑은 늘 도망가'에 대하여, 이문세는 "이제는 제가 임영웅씨의 노래를 부른 줄 알더라. 제가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니까 관객들은 '자기 히트곡도 있을 텐데 왜?'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더라"며 웃픈 농담을 날렸다. 그래도 "임영웅 씨 덕분에 역주행도 하게 되어서 저는 좋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문세는 "음악도 계속 움직이니까 시대에 따라 변한다. 최근에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한 '아파트' 역시 처음 듣고 너무 기발하다고 생각해서, 음원 발매 첫날 제 라디오 방송에서 틀었다"고 극찬하며 기존의 음악들을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젊은 뮤지션들의 시도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이문세는 매년 1년 주기로 시즌제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매번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문세는 "60대가 되면 생각도 행동도 모든 것이 느려진다. 그러다 보니 공연을 하다 보면 느린 템포가 저한테 맞더라"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을 인정하면서도 "제가 빠른 노래를 해도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의 눈빛과 마음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하자는 동기부여가 생긴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공연에 오신 분들은 히트곡 하나를 듣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이 한 바퀴 돌아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삶의 여정들이 이문세의 노래 한 곡으로 스쳐 지나가고, 지금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구나 느낀다. 그래서 제가 허투루 준비할 수가 없는 것"이라며 공연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을 드러냈다.

유재석 존경하는 이유

한편으로 이문세는 방송계 후배인 유재석에 대한 리스펙을 전했다. "예전엔 까마득한 후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너무 존경스럽고 존중한다"고 밝힌 이문세는 "저는 방송 대표작이라고 해봤자 몇 개 안 된다. MC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한 1년하고 그만두게 해달라고 호소하곤 했다. 그런데 유재석은 33년째 이런 수많은 프로그램을 한결같이 하고 있는 거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도 이런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인생 선배로서 현재의 20-30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에 대하여 이문세는 "저도 20대 때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었다. 그럴 때 당황하기도 하는데, 기다려야 한다. 눈 속에 파묻혔을 뿐 길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어둠에 가려졌을 뿐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질하다 보면 새벽이 오면서 길이 보이듯이, 힘들어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문세는 현재 자신의 큰 고민으로 "언제까지 할 건데?"라는 질문을 꼽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박수칠 때 더 멋지게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수가 끊기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받기 위해 노래하는 게 저희의 운명"이라는 소신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문세는 "박수를 쳐주는 관객이 없으면 공연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관객이 박수를 치며 이문세를 연호하는 목소리에 힘이 나서 노래를 했던 거다. 거기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끝내겠습니다'는 못 하겠더라"고 밝히며 "스스로 제 힘으로 서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모든 공연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저도 슬프고 관객들도 슬프니까. 그래서 제 인생에 '은퇴 공연'이라는 건 없다"라고 선언하며 앞으로도 영원한 현역 가수로 남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유퀴즈 이문세 별이빛나는밤에 17집 옥관문화훈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